[CoverStory] ‘상품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에게 직접 들어봤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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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최근 30년간 새로 농사를 짓겠다고 한 사람이 있었나.”

짐 로저스(66)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되레 반문했다. 국제 농산물 가격이 왜 급등했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1990년대 말 원자재 가격 상승을 정확히 맞혀 ‘상품 투자의 귀재’로 불렸다. 중국 투자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최근엔 미국 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쏟아내며 뉴욕 집을 팔고 싱가포르로 이사했다. 21일 국제전화를 통해 원유·금속·농산물 등 원자재 가격이 어디까지 치솟을지 물었다. 한국 투자자들이 지난해 뭉칫돈을 쏟아 부은 중국 증시에 대한 전망도 함께 들었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이 침체 위기다. 원자재 값이 계속 뛸 수 있나.

“미국은 이미 침체다. 수요가 줄어들 거다. 하지만 공급 부족이 더 크다. 대규모 유전 탐사가 이뤄진 건 거의 40년 전이다. 25년 동안 새로 문을 연 대규모 납 광산은 딱 하나다. 밀 경작지는 30년 동안 꾸준히 줄었다. 이제는 농부도 부족하다. 더 오른다.”

-올해 밀 생산 증가율이 사상 최대가 될 거란 전망도 있다.

“생산이 늘어도 상당량이 재고 비축분으로 들어갈 거다. 현재 각국의 식량 재고는 최근 10년간 최저 수준이다. 농산물 생산 비용도 엄청나게 뛰었다. 비료·종자 모두 올랐다. 농산물 값이 옛날 수준으로 떨어지면 (관련 업종은)다 망한다.”

-원자재 값이 오른 건 투기세력 때문 아닌가.

“(투기적인) 헤지펀드만 원자재에 투자하는 게 아니다. 연금·신탁·뮤추얼펀드도 한다. 그곳에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 투기는 80~90년대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안 올랐다. 지금 값이 뛰는 건 상황이 그럴 만해서다.”

-올해는 어떤 원자재에 투자해야 하나.

“단타 매매는 내 전공이 아니다.(웃음) 천연가스는 원유에 비해 덜 올랐다. 농작물 중에는 설탕·목화·커피·오렌지가 싼 편이다. 상대적으로 값이 싼 상품은 처음엔 잘 움직이지 않지만 결국엔 오른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21세기 경제 대국이 될 거라고 주장해 왔다.

“19세기 미국을 생각해 보라. 끔찍한 내전과 여러 번의 침체를 겪었다. 인권도 무시됐다. 하지만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됐다. 중국이 1인당 국민소득에서 미국을 제칠 것이란 말은 아니다. 다만 중국은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고, 미국은 지금이 정점이다. 과거 영국에서 미국으로 경제 패권이 넘어갈 때를 생각해 보라. 이런 시기에 어떤 사람은 큰 돈을 벌고, 어떤 사람은 잃는다.”

-중국 주가는 지난해 10월 이후 반 토막 났다. 한국의 중국펀드 투자자들도 올해 1분기에만 25%의 손실을 입었다.

“나는 10월 이후론 중국 주식을 안 샀다. 하지만 팔지도 않았다. 조만간 ‘팔자’ 물결이 정점을 지날 거다. 이 혼란이 진정되면 중국 주식을 더 살 생각이다.”

-한국 증시 전망은.

“한국은 더 이상 신흥시장이 아니다. 신흥시장 투자 펀드가 한국에서 돈을 빼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아직 선진국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한국을 쳐다보지 않는다. 과도기인 셈이다. 한국은 무역장벽을 없애고 시장을 더 개방해야 한다.” 

김선하 기자

◆짐 로저스=1970년대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만들어 10년간 4200%라는 놀라운 수익률을 올려 유명해졌다. 80~90년대엔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승용차·오토바이로 돌며 투자처를 찾아나서 ‘금융계의 인디애나 존스’란 별명을 얻었다. 98년 대표적인 국제 원자재 지수인 ‘로저스 인터내셔널 커머디티 인덱스(RICI)’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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