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국기행>네팔무스탕왕국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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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태고의 신비가 감도는 고봉준령의 자락에 숨어 있는 은둔의 「소국」들.구름도 쉬어가는 험준한 산세에 가로막혀 문명의 이기(利器)도 모르는채 그들 나름의 독특한 삶을 일궈가는 「작은 나라」들.세월이 정지한듯 아득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들 삶의 현장을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편집자註] 고적부터 쌓인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너무 차 물고기 한마리 살 수 없는,그래서 죽음의 신이 살고 있다는 칼리간다키江.침묵하고 있는 산과 광활한 대지에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자라지 않는 황량한 땅.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산소마저 희 박한 히말라야의 고봉준령들이 병풍처럼 둘러친 그 뒤쪽에 외부세계와 단절된채 출입이 통제된 은둔의 나라 무스탕 왕국이 있다. 〈약도참조〉 전기.전화.자동차.오토바이.TV는 물론 심지어 자전거나 소달구지 한대 없이 중세 이전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인구 1만3천명의 초미니 왕국이다.네팔 영토안에 있으면서도 거의 독립을 유지,훼손되지 않은 티베트문화와 관습 을 옛날처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나라.우리는 현대문명으로부터 고립된 이 땅을 탐험하기로 했다.
무스탕이라 하면 60년대 중반 미국의 포드자동차社가 개발한 소형 스포츠카로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차,2차대전당시 미국의 주력 전투기로 독일.일본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세우고 6.25때는 북한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 해 참전했던 미국의 전투기 이름인데다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겨울코트의한 종류가 아닌가.
그러나 무스탕 왕국은 이런 이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심지어브리태니카대백과사전에조차 무스탕 왕국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우리가 이 작은 왕국에 관심을 거둘 수 없는 이유는 우선 이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평균 고도 5천)위치하고 가장 먼 곳에(적어도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거기까지 가는데 10일 이상이걸린다)있기 때문이다.또 이곳으로의 여행은 시 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로의 여행이라는데 더욱 흥미가 있다.
무스탕이라는 이름은 이곳 주민들에겐「로」(Lo.티베트말로 남쪽을 의미)로 알려진 칼리간다키江 북쪽에 있는 땅을 가리킨다.
무스탕은「로」의 수도 만탕(Mantang)을 네팔인들이 잘못 전한 것이라고 한다.만탕은 티베트말로 「열망의 땅 」이란 의미다. 50년초 중공군이 티베트를 침공하고 59년 달라이 라마가인도로 망명했을 때 티베트의 캄지방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중공군에 완강히 저항했다.이들은 티베트가 완전히 점령당하자 무스탕왕국으로 쫓겨와 게릴라전을 시작했다.이들을 캄파스 라고 하는데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대만의 국민당 정부가 이들을 지원했다.이때 중국은 네팔에 압력을 가해 무스탕의 남쪽 국경을 폐쇄시켜 이 나라를 외부세계와 완전 고립시켰다.
그것이 무스탕이 외부세계와 단절된채 은둔의 나라로 남게 했다. 로바스(Lobas),즉 무스탕 사람들은 티베트말을 하고 티베트종교를 믿으며 생불(生佛)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네팔의 힌두교 문화권 속에서 경제적으로는 비록 네팔의 루비貨를 사용하고 군사적으론 네팔 국경수비대에 의존하고 있으나 수세기를 지탱해온 現 비스타왕가는 옛날과 똑같은 법률.관습에 따라무스탕을 다스리고 있다.
무스탕 왕국은 현재까지도 계급사회를 철저히 유지하고 있다.모든 주민은 크게 네 계급으로 나뉜다.첫째는 귀족계급이고,둘째는승려계급,셋째는 자기 농토를 소유한 농민,넷째는 농토없는 농민이나 왕.부호들이 소유한 하인. 농노들이다.이들 은 각자의 직업과 직책에 따라 왕에게 봉사한다.어떤 이는 유사시에 군인으로,어떤 이는 왕이 여행할 때 수행원으로,어떤 이는 왕의 편지를배달하는 일을 맡고 있다.
또 어떤 농부는 왕궁에 땔나무를 대주고 다른 농부는 왕 소유의 가축을 돌보며 또 다른 사람은 한달에 며칠씩 왕궁을 청소하는등의 봉사를 한다.이러한 직책은 몇세기에 걸쳐 세습되고 있는데 이와같은 유기적인 사회 제도가 이 왕국을 지금 까지 지탱해온 것으로 보인다.
무스탕에서는 회교국과는 정반대로 일처다부(一妻多夫)관습이 아직도 내려오고 있다.만약 한 집안에 세 아들이 있으면 장남이 집과 모든 농토를 상속받으며 차남은 반드시 출가시켜 스님이 되게 한다.셋째 아들은 장남 밑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장사를 하거나 장남의 부속물로 역할하는데 며느리는 장남 한사람한테서만얻는다. 따라서 형제가 얼마가 되든 며느리는 하나며 한 지붕 밑에서 똑같은 결혼생활을 한다.이들로부터 생긴 아이는 장남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나머지는 모두 삼촌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관습은 오래된 전통으로 이들의 성도덕이 문란해서가 아니고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검소한 생활방식이며인구 억제를 위한 방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글 =兪炳龍(자유기고가) 사진=洪淳泰(신구전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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