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숙제마무리 과잉지도 삼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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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8일은 국민학생들의 개학날.방학숙제와 이에 대한 시상을 두고 비판의 의견이 많다.어디까지나 자율과 창의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할 국민학교 교육이 우리 아이가 방학과제물 상이라도 받게 해야겠다는 어른들의 욕심으로 멍들고 있 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3년여 살다 작년말 귀국한 김선주(金善珠.36.서울노원구상계동)씨는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개학을 코앞에 두고 국민학교 4학년인 아들의 방학숙제 정리 때문이다.
평소에도 숙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일로 학교생활 적응이 어려워 집에서 가끔 혼자 소리도 지르고 벽에 머리도 부딪치곤 하는아들로 인해 여간 속상하지 않은 터에 방학이 돼도 사정이 별반나아진 게 없어 짜증이 난다.
탐구생활은 물론 고적답사,일기장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사진을 정리하고 문장을 새로 고치는 등 일일이 챙기다 보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이게 아닌데…」하면서도 주위의 엄마들이 숙제를 도와주는 차원을 넘어 도맡다시피 하는 행태를 대하고 보면 마냥 팔짱끼고 있을 수만도 없다.미국에서 살 때는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사무소 같은 곳에서 방학 동안 운동.독서를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원하는 분야를 선택해 마음껏 즐기다 돌아오는 게 방학생활의 전부였다.
지도교사는 자원봉사 나온 고등학생들.
아이가 호주에서 2학년까지 다니다 돌아와 현재 국민학교 3학년인 전숙희(田淑喜.35.서울강남구도곡동)씨도 마찬가지.
호주에서는 보통때도 숙제라는 개념이 없을 뿐 아니라 방학기간에는 아이가 원할 경우 도서관이나 수영장.리틀야구단에서 하루를보내면 그만이었다.田씨는 평소 각종 시험에다 일기장 검사까지 하는 것도 모자라 방학이면 어김없이 부과되는 각 종 방학숙제가과연 교육적인가에 무척 회의를 느끼고 있다.
일본도 방학숙제에 관한 한 우리와는 판이하다.예를 들어 방학동안 붓글씨를 연습해 3개 가량을 써 오게 하고 개학하면 학교에서 다시 하나를 쓰도록 하는 식이다.그리고 나서 전교생의 작품을 일률적으로 전시한다.방학과제물 상이라는 건 물론 없고 부모들의 솜씨가 개입될 여지도 없다.
전문가들은 매번 방학 때면 되풀이 되는 이러한 부작용이 교육제도의 잘못과 부모들의 비뚤어진 열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화여대 정재삼(丁在三.38.교육공학과)교수는 『방학을 학교에서 못 다한 실험.실습이나 현장학습을 보충하는 기회로 삼는 교육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분석한다.
서울 온곡국민학교 김은희(金銀姬.41)교사는 『스스로 할 수있는데까지 해본다는 방학숙제의 본뜻을 부모들이 제대로 이해해야한다』고 강조한다.학부모들이 탐구생활의 관찰문제를 위해 일부러바다에 가고,그것도 모자라 현장에서 찍은 사 진까지 붙이는 과잉열성이 바로 문제의 진앙지(震殃地)라는 것이다.또 시상할 때도 교사들이 어린이들의 수준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한다.
〈金明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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