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자동차 찾아 호주 오지까지 누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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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다음달 1일 문 여는 제주도 서귀포시 '세계자동차박물관'을 세운 김영락 관장과 1950년대식 벤츠 퀄링.

세계에 6대뿐인 영국산 ‘힐만 스트레이트8’, 영국 왕족이 탔던 ‘롤스로이스 실버스퍼’, 1960년대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던 ‘캐딜락 엘도라도 오픈카’. 좀처럼 보기 힘든 옛날 명품 자동차들을 국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다음달 1일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문을 여는 ‘세계자동차박물관’엔 해외 클래식카 59대와 국산 자동차 10대, 경비행기 3대가 전시된다.

15만㎡ 규모의 이 박물관을 만든 주인공은 김영락(66)관장. 개인 돈 220억원을 들여 아시아 최초로 개인 소장 자동차박물관을 세웠다. 그는 자동차 관련 일을 하는 사람도, 차 매니어도 아니다. 경북 구미에서 30년 넘게 화학약품 사업을 하다 2001년 회사를 팔고 은퇴한 사업가 출신이다. 그런 그가 자동차박물관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2003년 미국여행 때 경험이었다.

“미국 비행기박물관에서 선생님 설명을 듣는 초등학생들을 봤어요. ‘내가 나이 60 넘어서 처음 본 걸 이 나라에선 어린이도 보는구나. 그래서 선진국이구나’라고 생각했죠. “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박물관을 세우겠다는 계획으로 구체화됐다. 혼자 힘으로 비행기박물관은 만들기 힘들어도 자동차박물관은 세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에 걸맞은 자동차박물관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때부터 전시할 차를 찾아 미국·캐나다·호주·유럽 등 세계 곳곳을 누볐다. 역사적 가치가 있거나 희귀한 차가 어디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 곧장 여행가방을 꾸려 찾아갔다. 사진만 보고 호주 오지까지 달려갔으나 창고에 처박혀 있는 고물 차만 구경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나왔던 미국산 ‘드롤리안’은 구입 직전에 놓쳤다. 호주에서 어렵게 계약을 맺었는데 미국의 한 박물관이 가로챘다는 것이다. 그가 가장 못 잊는 순간은 38년식 영국산 ‘암라사도 나씨’를 사러 뉴질랜드에 갔을 때다. 명함을 건네자 여든이 넘은 차 주인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2만 달러를 깎아준 것이다.

차를 사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운반도 문제였다. 처음엔 보험회사들이 ‘차 가격을 매길 수 없다’며 보험 가입을 거절해 배에 실을 수가 없었다. 차를 사러 간 나라마다 보험회사를 들락거리며 사정한 끝에 간신히 보험을 들 수 있었다.

그가 구한 클래식카 중 가장 비싼 차는 목재로 된 28년식 ‘힐만 스트레이트8’. 구입비 7억원에 운반비가 1억원 이상 들었다. 벤츠에서 박물관용으로 제작해준 1883년식 ‘펜턴트’는 크기가 작은 수레만 한데도 1억원이 넘는다. 때문에 그는 “차 한 대 한 대가 자식처럼 소중하다”고 말했다.

김 관장이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자동차 회사가 해야지 돈도 안 되는 걸 왜 개인이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현대자동차는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구개발에 몰두하느라 못하고 있을 뿐”이라며 “현대차가 못하는 부분을 내가 좀 메워주고 싶다”고 답한다.

그는 여생을 자동차박물관 운영에 전념하기 위해 아예 대구에서 제주도로 이사했다. 앞으로 전시 차종을 늘려 박물관을 키울 계획도 세워 놓았다. “박물관을 다녀가는 어린이들 중에서 미래 자동차 개발의 주역이 나온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가슴 설레는 그의 소원이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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