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유럽의회 의원들 '돈 챙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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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월급여 1만1000유로(약 1650만원), 연간 여행 수당 2만8500유로(약 4275만원), 회의 참가 일당 262유로(약 39만3000원), 월 판공비 3700유로(약 555만원), 판공비 중 900유로(약 135만원)는 연금 불입금으로 사용 가능, 전용 자가용이 있지만 택시비는 별도, 우대세율 적용.

어느 대기업 사장의 얘기가 아니다. 이탈리아 출신 유럽의회 의원이 받는 급여 명세서다. 유럽의회 의원이 되면 톡톡히 한몫을 챙길 수 있다. 지역구 관리에 돈이 거의 들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의원들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최근 의회 사무국은 다수 의원이 '삥땅'을 해왔다는 혐의를 잡아냈다. 대리인을 시켜 회의출석부에 서명한 후 일당을 챙겨왔다는 것이다.

사무국 고위관리는 "실제 참석자 서명 명부와 유럽의원들의 자필 서명 원부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단서를 잡아냈다"고 밝혔다. 일당은 회의가 취소돼도 의원들이 잠시 얼굴만 내비치면 지급된다. 그런데 이조차 귀찮아 불법서명을 일삼아왔다는 것이다. 의원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예전부터 으레 그렇게 해왔기에 대수롭지 않다는 투다.

사실 유럽의회 의원들의 뻔뻔한 행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올해 적용될 자신들의 월급을 지나칠 정도로 올려 물의를 빚었다. 당시 명분은 그럴 듯했다. 긴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의원봉급보다 적은 유럽재판소 판사 봉급에 맞추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엉큼한 속셈이 드러난다. 판사 급여가 올해부터 오를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의원 급여를 그에 맞추겠다고 나선 것이다.

유럽 납세자연맹의 미하엘 예거 사무총장은 이번 사건을 '사기'로 규정했다. 해당 의원들에게는 형사고발을 하고 의원 면책특권을 빼앗아야 한다는 성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들끓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유럽의회 패트 콕스 의장을 비롯한 의회 지도부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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