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阿共 만델라대통령 한국언론 첫 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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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만델라 대통령과 인터뷰가 이뤄진 곳은 남아공 특유의 따사로운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대통령宮앞의 넓은 뜰이었다.주위는 온통 짙푸른 숲으로 여간 아름답지 않다.과거 백인 대통령이 거주하며세계적으로 악명 높았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 이트)을 무자비하게 실시하던 이곳에서 첫 흑인 대통령을 만나게 돼 새로운 감회에 젖게 했다.
만델라대통령은 소박한 인상을 주었으나 77세라는 고령 탓인듯처음에는 힘이 없어 보였다.그러나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아주 논리적이었고 설득력이 있었다.
4백년에 걸친 백인통치를 종식시킬 수 있었던 만델라대통령의 저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만델라대통령은 이번 韓日순방과 관련,무엇보다 경제문제를 중점거론했다.
『이번 순방은 남아공과 韓日양국간에 있어온 기존 관계를 한차원 끌어올리는 동시에 경제협력 강화가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이라고 그는 서두부터 강조했다.
최근까지 계속된「경제봉쇄」로 풍족한 지하자원등 천혜의 자연조건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은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을 못벗어난 상태다. 비록 백인통치를 종식시킨 지난해 선거이후 정치적 안정은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있으나 사회인프라의 부족,50%에 달하는 흑인실업등 각종 경제문제가 산적한 상태에서 이같은 입장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韓-남아공 관계에 대해 만델라대통령은 앞으로 두나라의 협력이훨씬 긴밀해질 가능성이 큼을 강조했다.
만델라대통령은『양국 경제 관계는 지난해 12월 정식국교가 맺어진뒤 급격히 신장,한국은 현재 남아공의 13번째 무역상대국으로서 홍콩과 같은 수준』이라며 우리나라의 비중이 적지 않음을 먼저 강조했다.
그는 이어『현재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국가재건계획(RDP)에 한국업체가 다수 참여,남아공을 발전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DP는 도로.항만등 산업인프라와 기간 산업을 구축하고 경제투자에 주력,국가를 부흥시키자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비슷한 것이다.만델라대통령은『이미 한국 업체가 주택건설분야에 상당 수준 관여하고 있다』며『이같은 일은 국민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동시에 실업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치하했다.
그는 이어『현재 남아공내에서 섬유제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한국,그리고 동남아국가에서 수입하는 편이 관세를 물더라도 훨씬 싸게 먹힌다』며 향후 양국간 통상이 크게 신장될 것으로 전망했다. 만델라대통령이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 주안점을 두는 것중 하나는 외국인 투자유치였다.
그는『여러 요인으로 인해 외국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는데,이에 대한 대안은 마련하고 있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복잡한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을 자제하도록 설득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
특히『개인적으로는 노동운동의 지지자이지만 이제는 기업인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으며 오늘 아침에도 주요 기업인들과 만났다. 나는 노사 양측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평화의 메시지」를 주기를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만델라대통령은『92년 대한 무역진흥공사(KOTRA)사무소가 남아공에 개설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순방과 관련된 답변이 끝나자 기자들은 남아공 내부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먼저 현재 남아공의 핵심정치이슈로 떠오른 콰줄루-나탈 지역 자치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만델라대통령은『남아공의 어떠한 지역도 특정인들(줄루族)에 의해 떨어져 나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그는『이 문제는 국민투표등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돼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기자가『현재 남아공의 RDP가 제대로 수행되고 있지 않다고 많은 외국인들은 보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만델라대통령은 이에 대해『많은 이들은 RDP를 과거 미국의 뉴딜정책에 비유하고 있다.그러나 남아공은 미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미국은 인프라가 이미 마련된 상태에서 뉴딜정책을 실시했으나우리는 거의 맨주먹으로 출발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두껍고 묵직한 손 그는 이어『현재 GDP 대비 투자비율이 멕시코가 25%에 이르고 있으나 남아공은 17%에 불과하다』며 투자부족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그러나『지난해 총선이 실시될 즈음해서 1백억달러의 자금이 해외로 유출됐으나 이후 정치적 안정이 회복되면서 이중 절반이 국내로 다시 들어왔다』며 만델라대통령은『정치적 안정이 남아공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거듭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만델라대통령은『그간 대만.중국.말레이시아등 동남아의 다른 주요국들은 대통령 당선후 방문한 적이 있었으나 한국엔가본 적이 없어 이번 기회에 꼭 가고 싶다』고 방한동기를 설명했다. 짧은 30분간의 기자회견이 끝난뒤 만델라대통령은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다.
기자가 잡아본 그의 손은 27년간의 투옥과 강제노동에 시달린탓인듯 두껍고 묵직했다.20대 초반 이후 무려 50년넘게 고통스런 민주투쟁을 벌여온 위대한 투사의 손이었다.
***프리토리아에서 南禎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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