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이남긴것>1.자리잡은 TV유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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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인당 2만원」.이게 지금까지 선거유세에서 청중동원비의 정가였다.87년이래 92년 대선까지 이 가격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그래서 어느 후보가 1만명규모의 군중집회를 가졌다면 대략 2억원 정도가 소요됐음을 의미했다.6.27 선거에서 는 청중이1만명 이상 모인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합동.정당.개인연설회를 막론하고 같은 양상이었다.전국이 유세로 뒤덮였지만 그 영향력은 과거와는 현저히 차이가 있었다.후보들은 청중을 모으기 위해 연예인과 스포츠스타,도우미 미녀들을 동원했지만 흥행은 시원치 않았다.
이는 무엇보다 돈안쓰는 선거가 정착되기 시작한데 원인이 있다.간혹 후보차원의 금품제공 시비는 있었지만 조직적이고 규모가 컸던 과거와는 달랐다.그래서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현상이다.
기업이 선거자금으로 비자금을 제공하고 반대급부로 특혜가 주어지던 관행의 터널에서 벗어난 것의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할 일이아니다.그런면에서 승패를 떠나 정부.여당의 노력을 인정할만하다고 하겠다.
반면 자원봉사제도의 정착은 미흡했다.유세의 세대결이 이뤄지지못한 것은 후보의 손발인 자원봉사자가 적었거나,있어도 적극적 활동을 하지 않은데서도 영향을 받았다.일부후보들은「외상봉사」등사실상의 일당운동원 기용으로 세를 부풀렸지만 한계를 넘지 못했다.대신 선관위 자원봉사자들이 불.탈법 감시활동과 일부 선거관리업무에 기여함으로써 자원봉사제 도입의 뜻을 살렸다.
유세의 자리에는 미디어가 들어섰다.새선거법이 낳은 현상중 가장 괄목할만한 부분이다.
주요후보들은 경쟁자들과 나란히 TV토론에 나서야했다.그리고는카메라렌즈 앞에서 설전을 벌여야했다.안방의 유권자들은 이 과정에서 후보들간의 비교평가가 가능한 많은 판단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다. TV토론은 국회의 중계제도 도입과 함께 비디오정치시대의 개막을 예고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앞서가는 유권자들은 컴퓨터통신으로 후보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어볼 수 있었다.
물론 보완의 필요도 지적됐다.토론회는 도입되자마자 홍수사태가났다.매체와 사회단체들간의 과당경쟁때문이었다.토론준비하고 참여하느라 후보가 다른일을 못할 지경이라는 비명이 나오기도 했다.
토론의 공동중계를 가능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판단.추진력보다는 선동에 능한 탤런트후보가 돋보일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개선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관권.금권의 공백을 말싸움이 메웠다.공당들이 상대당이나 경쟁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흑색선전을 방불케했다.거친 입들의 공방은 종반에 맞고발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정부의 기밀서류를 선거 에 이용하려는 야당의 행태나 선거를 의식해 필요이상으로 과민반응한 정부의태도 역시 구태의 재연이었다.
선거운동의 내용도 질적개선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낙제점을 받았다.정책으로 인물로 승부하는 풍토는 아직 멀었다는 지적이다.선거초반 정책을 내걸던 각당은 곧바로 전략을 부동층 공략의「비법」인 지역감정 자극으로 바꿔잡았다.
유권자들도 여론조사에는 인물을 보고 찍겠다고 해놓고는 결정은출신지역이나 혈연.학연을 기준으로 삼았다.이는 그동안의 여론조사 흐름에서 입증되고 있다.
또한 지명도가 있고 언론이 집중보도한 광역후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후보들이 관심사각지대에서 선거운동을 해야했다.
이들 잊혀진 후보들을 유권자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金敎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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