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게임 하루 만에 역풍 … 주춤한 이재오, 꿋꿋한 이상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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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4일 한나라당은 조용했다. 불과 하루 전 노골적인 권력 투쟁으로 번졌던 공천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 전날 갈등의 주체가 됐던 당내 권력자들은 제각각 암중 모색에 들어갔다.

전날 “2차 결행을 하겠다”고 예고했던 이재오계와 수도권 소장파는 공개적인 목소리를 내진 않았다. ‘주춤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이재오 의원은 이날 지역구(서울 은평을)에 있는 참모에게 전화를 걸어 “총선 불출마 얘기를 한 적이 없으니 구민에게 잘 설명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전날 이명박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자신이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동반 불출마하는 방안을 건의했다는 얘기가 돌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이런 해명은 이 의원의 홈페이지에도 게시됐다.

홈페이지엔 한때 ‘은평을에서 승리하겠다’는 표현도 있다가 빠졌다. 이 의원은 청와대 면담을 끝으로 잠적했다. 서울 근교에서 칩거 중이란 얘기가 돌 뿐이었다.

이 의원의 진짜 고민은 여전히 불출마 선언 여부라는 게 측근들의 얘기다. 한 측근은 “이 의원이 어제(23일)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을 만나 불출마 뜻을 밝혔는데 대통령이 만류한 것으로 안다”며 “이 때문에 이 의원은 장고(長考)를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이렇게 고심하는 이유는 대통령의 손길마저 뿌리치고 불출마를 강행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두 가지 상황 때문이다.

이 부의장의 출마 의사가 워낙 견고해 이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더라도 ‘반향 없는 행동’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부의장은 이날도 지역구를 누볐다. 25일 후보 등록을 하겠다는 의사도 견고했다. 이 부의장이 지역구가 있는 경북도당은 이날 “공천 반납 주장은 당이 결정한 공천을 부정하는 해당행위”라고 반격에 나섰다. ‘역풍’인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역구 여론조사에서 뒤지고 있는 이 의원으로선 자칫 4년간 원외로 떠도는 상황까지 염두에 둘 수밖에 없게 됐다.

여론의 흐름도 관건이다. ‘여권 내 헤게모니를 잡으려고 이 부의장을 밀어내려 한다’는 눈총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의원과 이 부의장은 ‘이명박 진영’에서 각각 강경파와 온건파를 대변하는 인물로 지난해 경선 때부터 진영 내 주도권을 놓고 대립해 왔다.

전날 이 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했던 성명파도 주춤거리고 있다.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부의장의 용퇴를 위해선 청와대가 나서 줘야 한다는 판단이었으나 그럴 의향이 전혀 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의원은 “우리의 주장이 권력 투쟁으로 비치고 있는 상황 같다”며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의원과 성명파 의원 중 일부가 이날 오후 모처에서 밤늦도록 긴급 회의를 열고 향후 다른 방안에 대한 모색을 시도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성명파 의원은 ‘불출마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으나 주변에서 만류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들과 별도로 당 일각에선 이 부의장의 출마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더 높다는 이날자 저녁 방송의 여론조사를 인용, 청와대를 설득하려는 노력을 벌이는 게 감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내에선 “의원 55명의 이 부의장 불출마 요구는 여권의 갈등과 내분 상황만을 확인한 채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다”는 얘기가 번지고 있다.

고정애·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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