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첫 한국화랑"가나 보부르" 대금연주속 임옥상展오프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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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15일오후7시 프랑스 파리의 중심지 카르티에 마레의 조르주 퐁피두센터 바로 뒤편 탕플롱 매그 등 세계적인 유명화랑이 몰려있는 화랑가에 한국 대금의 청아한 소리가 울려나왔다.
한국화랑으로는 처음 파리에 진출한 가나화랑의 파리지점 가나 보부르에서 이날 개막된 화가 임옥상(林玉相)씨 개인전을 축하하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김영동씨의 대금 연주 소리였다. 모시 한복을 차려입은 김영동씨의 차분한 메나리 연주는 林씨의 파리 진출을 격려하면서 파리 미술인들의 가슴 속에 한국문화의 한자락 정수(精髓)를 전하는 듯했다.
가나화랑이 파리에 진출한 것은 지난3월.한국작가를 소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林씨는 80년대 사회적 부조리와 모순을 그림에 짙게 반영시키면서 대표적인 민중작가로 활동해왔다.
林씨가 파리의 첫번째 전시에서 소개한 작품은 『땅』『보리밭』『들불』등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80년대 대표작으로 꼽은 작품들과 지난 5월 서울전에서 선보였던 대형 흙작업 『어머니』『일어서는 땅』등 15점이다.
林씨는 『한국화랑을 통해 파리에 제일 먼저 소개되는 영광을 가져 매우 자랑스럽다』면서 『외국에서 전시할 경우 언어문제.현지 관행등 골치아픈 일이 많은데 이같은 한국화랑이 파리에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 다.
이날 오프닝에는 제르맹 비아트 퐁피두센터 현대미술관장등 파리의 미술관계자들이 대거 참석,김영동씨의 연주를 들으면서 흙이라는 자연성을 통해 문명을 비판한 林씨의 강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그러나 이날 전시장을 찾아와 林씨를진심으로 축하해준 사람들은 다름아닌 이곳의 유학생작가들이었다.
가나 보부르화랑 자리는 원래 프랑스 1급화랑중 하나인 보부르화랑 분관 자리로 지난해말 가나화랑이 파리 진출을 위해 보부르와1년간 공동사용키로 계약한 곳이다 .
가나화랑은 국내활동도 활발하지만 83년부터 파리와 뉴욕에서 외국작가 작품을 사고파는 딜러로서도 오랫동안 활동해온 덕에 이곳에서 인지도가 높은 한국화랑으로 손꼽힌다.
파리의 화랑가는 최근 몇년째 계속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호재 가나사장은 『파리 미술시장의 침체가 오히려 한국화랑이 진출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는 것같다』고 말한다.
비록 이름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한국화랑이 파리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잘돼야 몇년은 좋이 걸릴 것으로 봤다는 그는 지금부터라도 착실히 한국 작가를 소개해 이곳 화단에 한국 현대미술의 존재를 알리겠다는 생각이다.
오프닝에 참석한 임영방(林英芳)국립현대미술관장 역시 『이곳의화랑 위치와 전시장 내부는 서울의 1급에 못지않다』면서 『좋은한국작가들을 초대,이곳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이 파리에 깊이 있게 소개될 수 있기 바란다』고 가나 보부르에 거는 기대를 표시했다. 현재 파리에서 작업하는 한국 작가는 3백~4백명으로 이가운데 극소수만이 전업작가로 활동하며 나머지 대부분은 현지화단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채 서울화단을 바라보며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에게 가나 보부르의 등장은 현지에서의 활동 폭을 넓힐 수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지며 실제 많은 작가와 미술관계 유학생들이 가나 보부르를 만남의 장소,정보교환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 화랑의 등장과 이곳을 통한 한국작가의 소개는 이들 파리작가가 거는 기대 이상으로 국내에서도 1백년에 걸친 서구미술 수용의 역사와 서구미술 수입시대를 청산해가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돼야 할 것같다.이번에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임옥상씨 역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했다.
[파리=尹哲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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