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山(8,125M)트레킹 동행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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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해외트레킹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국산악회(회장 鄭明植)는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낭가파르바트 해발8,125m) 트레킹행사를 가졌다.총 1백30여명의 낭가파르바트 트레킹단에 참가해 8박9일의 여정으로 다녀온 동행기를 소개한다.
[편집자註] 「죽음의 산(Killer Mountain)」으로불리는 낭가파르바트.
밤새 텐트를 날려보낼듯 휘몰아치던 바람은 새벽녘이 돼서야 잠잠해지고 전날까지 화창했던 날씨는 급변해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그쳤다가는 다시 내리곤 하던 보슬비는 루팔베이스캠프(4,100m)인 바친빙하에 이르러서야 잠시 멈췄다.
그러나 허리까지 빠질 정도의 만년설로 뒤덮인 바친빙하에서 올려다 본 낭가파르바트의 봉우리는 구름너머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바친캠프(3,600m)에서 2시간정도 칼날처럼 선 능선을 따라가는 리지등반을 하며 루팔베이스캠프를 찾은 모든 이들에게 낭가파르바트는 작은 바람마저 끝내 거부했다.보이는 것이라고는 눈과 흙과 바위뿐 생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베이스캠프.오른편산정(山頂)에 쌓인 눈은 제무게에 못이겨 금세라도 쏟아져 내릴듯 자못 위협적이다.태고의 모습을 그 대로 간직한 그곳은 시간마저 정지된듯 적막마저 감돌았다.
실크로드를 따라 낭가파르바트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낭가파르바트 트레킹이 시작되는 마지막 마을 타르싱(2,900m)까지는 버스와 지프를 갈아타고 이틀이 걸리는(약 6백㎞) 머나먼 거리였다.
이 길은 동서 문화교류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실크로드의 일부다.중국의 장안(長安)에서 시작해 내륙 아시아를 횡단,지중해연안까지 연결됐던 실크로드를 따라 대상(隊商)들은 중국의 비단을 유럽으로 전했다.
또한 삼장법사와 혜초는 부다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1천여년전이 길을 걸었던 것이다.카라코람하이웨이는 파키스탄 정부가 12년간의 난공사 끝에 지난 78년 실크로드를 확대포장한 것으로 이슬라마바드에서 카라코람산맥의 분수령인 훈자랍고 개(4,730m)를 넘어 중국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오전5시(현지시간)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에 도착,공항식당에서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8대의 버스에 분승해 2시간 뒤인 오전7시에 길을 떠났다.
이슬라마바드의 어수선한 시가지를 빠져나오니 중앙선도 없는 도로는 울긋불긋하게 장식한 트럭과 미니버스가 곡예를 하며 달린다.거기에 수많은 양떼까지 뒤섞여 가뜩이나 혼잡한 길이 아수라장이다.아보타바드까지의 2시간 길은 사람의 홍수속에 보이는 모든것은 혼돈,그 자체였다.
탁실라와 아보타바드를 거쳐 5시간을 달리니 인더스강의 큰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 내린 인더스강은 시멘트를 섞은 것처럼 거무죽죽한 색깔을 띠며 모든 것을 휩쓸 것처럼 도도하게 흐른다.
첫 숙박지인 칠라스에 다가갈수록 주변의 경관은 크게 바뀐다.
그동안 보였던 녹색의 물결은 사라지고 도로 양옆으로 2천m이상의 고산준봉(高山峻峰)이 카라코람하이웨이를 따라 손짓하며 동행한다. 나무 한 그루없이 돌멩이와 바위만이 널려있는 황무지,그옆으로는 인더스강이 엄청난 수량을 자랑하며 흐르고 있다.길가에는 구도승들이 불경을 얻으러 파키스탄에 들어와 여행하는 도중 바위에 새겨놓은 벽화가 아직도 원형을 보존한 채 남겨 져 있다. 약 13시간의 버스여행끝에 도착한 칠라스에서 1박을 하고 이튿날 다시 길을 재촉했다.버스로 다시 2시간을 달려 주골로트에 도착한 후 지프로 갈아탔다.카라코람하이웨이를 벗어난 지프는1백여m나 되는 절벽을 끼고 비포장 길을 6시간정도 달려서야 타르싱에 도착했다.주골로트에서 타르싱까지는 낭가파르바트에서 시작한 아스톨지류가 좁은 협곡을 따라 굉음을 울리며 흘러내린다.
쇠줄에 매달린 나무다리를 건널 때는 곧 끊어질듯 삐그덕거리는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타르싱마을 뒤의 라이콧(7,046m)산은 해가 이미 진 오후7시인데도 눈덮인 봉우리가 햇빛에 붉게 빛났다.그것도 잠시 오후9시쯤 되자 떠오르는 보름달에 반사된 산봉우리의 모습은 황홀해 이틀간 버스와 지프에서 시달렸던 고생을 봄눈녹듯 사라지게 했다.이산저산의 골짜기마다 흐르는 개울가에는 노란 야생화가 하얀 이파리 사이를 비집고 함초롬히 피어 있다.
낭가파르바트=金世俊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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