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에살고재산도키우고>양평군 하자포리 李良元화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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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땅에도 임자가 있다고 한다.돈이 있다고 해서 아무 땅이나 다차지할 수 있는게 아니라 땅이 사람을 알아 보고 사람도 땅을 알아볼 때 그 땅의 임자가 된다는 얘기다.
거실 창문을 열고 낚싯대를 던지면 그대로 붕어가 달려 올라올것 같은 경기도양평군개군면하자포리의 강변 언덕 바로 위에 터를잡은 이양원(李良元.52.동덕여대교수)화백이 그런 경우다.
서울 북아현동에서 1백10평 부지의 단독주택에 살때부터 아담한 개인미술관을 만들만한 공간을 찾아 헤매던 그가 이 땅을 발견한 것은 93년 여름께였다.주변 모임을 통해 알게된 양평 토박이가 이 땅 주인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번 와 보고는 그대로 땅과 눈이 맞아 『이 땅 임자는 바로 나』라며 억지반 애걸반으로 밀어부쳐 빼앗다시피(?) 사들인 것이다.
부지가 7백평이나 되는데다 강변 언덕에 자리잡아 경관이 기가막히게 좋고,조경과 건축업을 하는 원래 주인이 워낙 지극한 정성으로 가꾸어 놓은 이 집은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물덩어리였다.값은 둘째치고 원래 주인은 애당초 팔 생각이 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다.강물에 씻겨 토사가 모두 매몰돼 지적상으로만 남아있는 버려진 땅을 사들여 덤프트럭 수백대 분량의 흙을 매립해 복구한뒤 집을 짓고 정원을 꾸미는데 7년이 걸려 뼛속에까지 정이 든 땅이었다.
그런 땅을,더구나 제값도 쳐주지 못하면서 무조건 달라고 했으니 말에 씨가 먹힐리 만무했다.그러나 한번 눈독을 들이고나니 꿈에서도 그림으로 나타나 도저히 물러설 수가 없었다.그때부터 李화백은 『내 땅 내놔라』며 주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주인에게 말이 통할만한 친구들까지 총동원해 「이 땅 임자는李화백」이라는 사실을 세뇌시켰고 틈만 나면 양주병을 차에 싣고양평으로 내려와 담판을 벌였다.
그러기를 1년여,마침내 지난해 6월에야 주인으로부터 항복선언이 떨어졌다.애당초 시가를 쳐줄 능력도 없었지만 값을 제대로 매길 수도 없어 들어간 돈만 쳐주기로 하고 3억원에 계약하던 날,주인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는 정원으로 나가 말없이 나무를만지작거리며 눈시울을 붉혔다.그때서야 李화백은 그가 이 땅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달았고 『걱정마,내가 당신보다 더 끔찍이사랑해줄테니까』라는 말로 미안함을 대신했다.
李화백이 미안해 해야 할 부분은 또 남아 있었다.막무가내로 졸라 턱없는 값에 도장 찍게는 했지만 그 돈마저도 바로 건네줄수 없었다.북아현동 집을 처분한 돈과 이리저리 융통한 돈으로 잔금을 다 치르는데 7개월이 걸렸다.정말 그가 이 땅의 임자가아니었다면 성사될 수 없는 계약이었다.
막내가 대입수험생이어서 아내와 가족이 서울에 살고 있지만 막내가 대학에 들어가면 곧바로 온가족이 합칠 계획이다.지금은 북아현동집에 살때부터 길러 온 모과나무 2그루,복돌이.복순이(강아지 이름),붕어 50마리,수시로 그의 담을 넘나 드는 남한강의 백로.두루미가 그의 식구들이다.그는 이곳에서 좋은 작품 하나 남기는 걸로 전주인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을 작정이지만 아직도 겉으로는 이렇게 큰소리친다.
『땅이 제주인 찾아 간거니까 뺏겼다는 소릴랑은 말어.이 땅 임자는 바로 나여 나.』 〈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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