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체육계 성폭력 가만 안 두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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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해 4월 충북 지역의 한 여자 중학교 체육교사 겸 농구부 코치 A씨는 선수들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그는 근육검사를 한다는 핑계로 선수의 허벅지를 더듬었다. 충북교육청의 조사 결과 A씨의 성추행은 사실로 확인됐다. 그러나 징계는 감봉 3개월에 그쳤다. 그는 인근 남자 중학교로 자리를 옮겨 계속 코치를 했다.

학교뿐만이 아니다. 여자 프로농구 우리은행의 박명수 전 감독은 소속 팀 선수를 성추행했다. 박씨는 지난해 7월 1심에서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인 A선수는 “박씨의 성폭력으로 선수 생활 중단을 고민할 정도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박씨를 상대로 1억2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체육계의 성폭력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와 대한체육회(회장 김정길)가 팔을 걷어붙였다. 인권위와 체육회는 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스포츠 분야 인권 향상을 위한 공동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의 내용은 ▶폭력·성폭력 침해 실태 조사 ▶징계 및 사법조치 촉구 ▶학생선수 지도자 대상 인권 교육 ▶장단기 인권 개선 방안 등을 함께 추진하자는 것이다.

문경란 인권위 상임위원은 “체육계에서 성폭력이 관행처럼 일어났지만 인권위나 체육회가 홀로 해결하기는 힘들었다”며 “인권위와 체육회 그리고 체육계 선배들까지 나선 이번 협약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협약식에는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전 배구 국가대표 장윤창 경기대 교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정재은 선수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인권위와 체육회가 실시하는 인권교육 및 캠페인 등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인권위는 또 성폭력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도입하기로 했다. 단순히 조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교육 및 상담을 병행하는 ‘인권친화적 접근’이다. 이 과정에는 스포츠 스타를 비롯한 각계 각층의 전문가가 참여할 예정이다. 인권위는 “선수와 지도자들의 인권 의식을 높이는 한편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돕기 위해서 이 같은 방법을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권위와 보조를 맞춰 체육회도 자정운동을 강화한다. 체육회는 협약식을 계기로 인권위의 자료 제출 및 관계자 조사 요구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또 조사 결과 성폭력 사실이 확인될 경우 사법적 조치와는 별도로 자체 징계할 방침이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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