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 시설 팔아 장교숙소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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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러시아 국방부가 장교들의 관사 건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부 훈련장과 사격장, 초대소 등 군사시설을 경매로 매각하기로 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 등 러시아 언론들이 13일 보도했다. 매각 대상에는 대규모 군사도시와 군사제한 지역으로 묶여 있던 부지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 국방부는 다음달 8일 모스크바의 러시아군 문화센터에서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등에 있는 20여 개 군사시설을 대상으로 첫 경매를 실시한다. 이번 경매 목록에는 러시아에서 부동산 가격이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진 모스크바 서부 류블룝스키 지역의 군사시설도 들어 있다.

러 국방부가 군사시설 매각에 나선 것은 군 복지 예산은 거의 없는 반면 옛 소련 시절 한때 400만 명에 달했던 러시아군의 병력이 최근 몇 년 사이 100만 명 수준으로 크게 줄면서 놀고 있는 군사시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3년 동안 군 예산을 크게 늘려 왔다. 올해 예산만 해도 지난해보다 40% 늘어난 434억 달러(약 42조원)로 책정됐다.

그러나 이 예산들은 주로 노후한 군 장비 보수나 신형 무기·장비 구입에 사용될 예정이어서 군인들의 복지 개선 예산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군 수뇌부가 ‘집과 땅을 팔아 돈을 만든다’는 고육지책을 생각해 낸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가 보유한 부동산은 총 13만500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13만1000 ㎢)나 오스트리아(8만3000㎢)와 같은 나라의 면적보다 더 넓다. 이 중엔 군부대· 사격장· 무기수리공장· 군사도시 등이 들어선 곳도 있지만 비어 있는 땅도 적지 않다. 군사지역은 지도에도 표시돼 있지 않고,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있다.

러시아군은 매각 대상으로 선정된 군사시설과 부동산을 모두 팔면 최소 1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돈을 장교 숙소 건설에 우선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부족한 장교 숙소는 러시아군이 수년간 고심해 온 문제다. 올 1월 현재 12만 가구의 장교들이 사택을 얻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있다. 일부 장교들은 개인적으로 부하 병사들을 동원해 사택을 지으면서 무리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계획이 제대로 효과를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러시아군에서 매각 대금이 원래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고 수뇌부의 주머니를 불리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러시아군 관계자는 “아직도 군에 팔아먹을 자산이 남은 줄 몰랐다. 이미 오래 전에 다 팔아 먹은 줄 알았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편 러시아군은 현재 징병제와 모병제를 혼합 운영하고 있지만, 2010년까지는 완전 모병제로 바꾸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 사전 단계로 올해부터 사병들의 의무복무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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