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규장각 古書 보존법 민간에 전수할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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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고서(古書)가 어둠 속에 방치된 채 훼손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세대에서 사라진 고서가 지난 수백년간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지난 8일 한국고전적(古典籍)보전협의회 초대 회장으로 선임된 송기중(宋基中.61) 서울대 규장각 관장. 이 협의회는 규장각과 국립중앙박물관 등 고서를 소장한 기관 42곳의 도서 관리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宋회장은 지난해 5월 규장각 관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이 단체의 결성을 준비했다.

그는 "국보급 도서를 소장하고 있어 보존시설과 인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규장각에서조차 장기 보존책 마련이 최대 고민거리"라며 "규장각이 이럴진대 전국의 대학도서관이나 개인이 소장한 고서는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그가 고서 보존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근무하던 10여년 전부터. 당시 그는 정부 연구과제로 민간이 보유한 고문서를 채집해 자료로 엮은 '고문서집성'의 발행 책임을 맡고 있었다. 현장에서 살펴본 우리 고문서의 보존 현실은 한마디로 참혹했다. 수백년간 전래돼 온 고문서가 한국전쟁 등 난리통 속에서 불쏘시개로 사라졌는가 하면 과수원에서 과일 겉싸개로 사용되기도 했다. 전통가옥의 벽장 등에 보관돼 수백년간 전승돼 온 고도서들의 경우 주거환경이 아파트 위주로 변하면서 보관 장소가 마땅치 않아 폐기되는 경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사정은 유명 대학 도서관 등에서도 마찬가지. 항온항습기 등 보존 시설을 보유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고, 유일한 보존책이 외부와 차단한 채 그냥 쌓아두는 것뿐이었다.

그는 "최근에는 도서관 직원의 한자 해독 능력이 떨어져 보존의 첫 걸음인 도서 분류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현재 전국의 기관.개인이 소장한 20세기 이전 발행된 고도서는 500만권 이상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고도서 보존을 위한 안내서조차 없다는 것. 유네스코 등에서 나온 것은 있지만 서양서적 위주라 한지로 만든 우리 고도서에는 잘 맞지 않는다. 규장각의 경우 항온항습 시설을 설치하고 국보급 도서의 경우 일일이 오동나무 궤짝에 넣어 보관하는 등 그간의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는 상태다. 宋회장은 일년에 한 번 바람에 말리고 먼지만 털어줘도 도서의 상태가 훨씬 좋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규장각의 경험을 민간과 공유할 계획이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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