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시시각각

‘국민성공시대’와 실용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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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인 『신화는 없다』가 대박을 터뜨렸다. 80만 부가 넘게 팔렸단다. 지금도 비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3위에 올라 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3월 첫째주 종합 순위에서는 14위를 기록했다.

대통령이 됐기 때문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노점상, 고학생, 일용노동자, 샐러리맨을 거쳐 30대에 대기업 사장이 되고, 40대에 회장이 된 성공 스토리에는 분명 감동적인 데가 있다. 강철같은 의지와 피나는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에게는 뭔가 배울 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많은 사람의 생각일 것이다.

자서전에서 이 대통령은 “가난을 원망하는 것만큼 못난 삶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부모님을 원망하지도, 가난한 조국을 원망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열심히 일하라고 이 땅에 태어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보다 앞서가는 사람들과 똑같이 잠자고, 똑같이 일해서는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한다. 성공 신화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만드는 것이란 얘기다.

취임사에서 그는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라고 했다. 자신의 삶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땀 흘려 노력한 국민이면 누구나 성공의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국민성공시대’라는 슬로건에 함축돼 있다.

부(富)가 곧 성공으로 통하는 세상이다. “부자 되세요”는 일상적인 인사말이 됐다. 성공의 결과로 부가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되면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기치로 내건 ‘국민성공시대’는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꿈과 현실은 다르다. 성공한 소수의 환호 뒤에는 실패한 다수의 한숨이 있다.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20:80’의 사회를 넘어 ‘1:99’의 사회로 가고 있다는 탄식도 나온다. 성공한 1%가 99%의 부를 싹쓸이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로마 교황청이 세계화 시대의 ‘신(新) 7대 죄악’을 제시하면서 소수에 의한 과도한 부의 집중을 그중 하나로 꼽은 것도 갈수록 심화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칭찬할 일이지 비난하거나 질시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법과 규정을 온전히 지키고, 정직하게 살아서는 부자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 실패한 다수의 변명이자 항변이다. 하늘에 닿을 듯한 부의 거탑(巨塔) 밑에는 반칙과 비리, 불법과 탈법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리게 마련이란 얘기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비리와 부정·부패 관련 뉴스가 이를 보여주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실용주의는 새 정부의 국정철학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무조건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의미라면 그 실용주의는 공허할뿐더러 파멸적이다. 경제적 성공과 함께 사회적 통합을 가능케 하는 것은 법과 원칙, 윤리와 도덕에 기초한 실용주의다.

‘강부자’ 내각이나 ‘강금실’ 내각이 뭐가 문제냐고 우긴다면 그것은 실패한 다수를 도외시한 발상이다. 과연 그들이 서민의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서민의 입장에서 정책을 편다고 믿을 수 있을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느냐고 하지만 먼지도 먼지 나름이고, 정도 문제다. 먼지가 쌓이면 오물이 된다.

규제를 풀어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옳은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를 맑게 하는 것이다. 누구나 법과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고, 제대로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 비리와 부정의 검은 거래를 뿌리 뽑아야 한다. 그래서 깨끗한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패자는 승자에게 승복하고, 승자는 패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런 사회로 가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때 이명박표 실용주의는 비로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