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농구판 때 늦은 '죄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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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한국농구연맹(KBL)의 프로농구 정규리그 개인상 시상은 반쪽잔치로 끝났다. 전날 예고된 대로 9개 부문 중 3점슛과 블록슛 부문이 시상에서 빠졌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발단은 두말할 필요없이 지난 7일의 '개인상 밀어주기'사건이다. 2백여 선수들이 시즌 개막 후 넉달 남짓 흘린 땀과 피가 몇몇의 개인욕심 때문에 맹물이 돼버린 사건. 수많은 농구팬들을 모독한 사건이다.

시상식에 참석한 농구인들은 "부끄럽다"고 입을 모았다. "시즌 내내 선수들이 땀흘려 쌓은 업적을 하루 아침에 뒤바꾸려 하다니…." 시즌 초반까지 모비스를 이끌었던 최희암 전 감독은 "기네스북에나 오를 일이었다"고 했다.

6~7일 이틀간 33개의 3점슛을 추가해 한발 앞섰던 문경은을 더많은 3점포로 제친 우지원도 뒤늦게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공허한 얘기다. '3점슛 왕'이란 명예와 자격을 충분히 갖춘 두 사람이지만 막판의 일탈행동으로 지금은 죄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정신없이 던진 3점슛을 막지않은 상대 선수들도 '페어 플레이'라는 스포츠 최고의 선(善)을 어긴 공범들이다.

비슷한 일이 과거 프로야구에도 있었다. 84년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강팀 OB를 피하기 위해 롯데에 일부러 져준 사건. 그리고 92년에는 빙그레(한화의 전신)의 한 선수를 타점왕에 등극시키기 위해 득점할 수 있던 동료 주자가 3루에서 머무른 사건. 그때 쏟아진 비난이 약이 됐는지 프로야구에서 그런 쇼는 사라졌다.

상(賞)과 찬사는 명예로워야 빛이 난다. 그 명예를 지키는 건 선수 스스로의 몫이다. 이번 사태를 그걸 깨닫는 계기로 삼지 못하면 프로농구는 정말로 외면당할지 모른다.

성백유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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