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로그 북’ 이 책의 미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범종에 관한 내용의 디지로그북에서는 컴퓨터로 종 내부도 볼 수 있고, 종소리도 들을 수 있다.

미래의 책은 어떤 형태가 될까? 종이로 된 책은 사라지고 전자책만 남을까?

광주과학기술원 문화콘텐츠기술연구소가 제작한 디지로그북 『범종』과 『운주사』 의 책장을 넘겨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디지로그 북’은 디지털(전자)과 아날로그(종이)를 겸비한 책이라는 뜻으로 쓴 조어다.

책을 읽는 사람은 『범종』의 종이 책장을 넘기면서 컴퓨터로 책에 나오는 에밀레종의 종을 쳐 그 종소리를 들을 수도, 내부 모습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책에 나오는 그림을 컴퓨터에 달린 카메라가 촬영해 컴퓨터에 보내 독자가 원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도록 꾸몄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책의 그림을 알아보고, 컴퓨터 속에 저장해 놓은 각종 문화재의 입체 영상을 꺼내 독자가 조작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운주사』에서도 책장을 넘기며 독자가 원하는 그림을 선택하면 세부 내용이 입체적으로 책장의 그림 위에 관련 영상이 나타난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결합인 것이다.

종이책을 그냥 맨눈으로 봐서는 그런 전자책의 기능을 동시에 활용할 수 없다. 전자책을 보는 별도의 카메라 또는 전자창이 필요하다.

◇종이책과 전자책 장점 결합=전자책은 보관이 용이하고, 애니메이션이나 동영상을 넣을 수 있지만 만질 수 없다. 즉 존재감을 느낄 수 없고 복사가 용이하다. 종이책은 존재감이 있고, 원본이 있으나 소장이 불편하고, 재인쇄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기 어렵다.

디지로그북은 이런 두 가지 장점을 결합한 미래형 책이다. 기존의 전자책이 종이책을 완전히 대체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디지로그북은 그렇지 않다.

디지로그북은 종이책과 전자책의 기능을 하는 디지털 자료, 책을 보기 위한 전자창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디지털 자료는 종이책의 내용을 전자적으로 더 풍부하게 만드는 동영상, 입체 영상, 애니메이션 등이다. 이런 자료는 전자창의 메모리에 저장돼 있다가 독자가 불러내면 언제라도 전자창에 나타나도록 한다.

우 소장은 “독자들이 전자창의 메모리에 저장돼 있는 여러 모델이나 그림, 동영상을 꺼내 스스로 디지로그북을 제작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하는 게 목표”라며 “앞으로 2년 뒤에는 그 완성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종이책에는 표시 없어=디지로그북의 종이책에는 전자장치가 아무것도 없다. 종이책 속에 무선인식표(RFID)를 넣어 놓은 것도 아니다. 단지 일반책과 똑같이 잉크로 인쇄된 것이다. 디지로그북의 핵심은 종이책에 있는 그림을 전자창이 알아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종이책 속의 그림의 특징을 알아보는 소프트웨어가 전자창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현재 연구실용 디지로그북용 소프트웨어는 데스크톱에 들어가 있지만 전자기술 발전에 힘입어 개인휴대단말기(PDA) 같은 크기에 내장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예상했다.

디지로그북이 실용화되면 책의 진화를 선도할 것으로 보인다. 독자가 스스로 책을 제작하기도 하고, 실감나는 멀티미디어를 보면서 독서 효과를 극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