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 때 살아남은 야샤리 “가족 15명 희생 기억하려 옛집 옆에 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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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98년 ‘인종 청소’가 가장 극심했던 코소보 스켄데라이의 묘지에 26일 한 참배객이 꽃을 올려놓고 있다. [사진=전진배 특파원]

아뎀 야샤리 코소보 독립군 지도자가 살던 프레카즈 마을 대학살 당시 살아남은 아뎀의 사촌 샤히트 야샤리(42·사진)는 “이제야 죽은 가족들이 편하게 눈을 감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코소보 정부가 얼마 전 집 앞에 세워준 추모비를 가리키며 “집에서만 부모와 형제 등 15명이 몰살당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대학살 며칠 전부터 외부에 있어 화를 모면했다. 야샤리는 “가족들을 한꺼번에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마음을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대학살 이후 마을을 떠나려는 생각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과 다른 코소보인들에게 아픈 기억을 생생히 남겨주고 싶어서 부서진 집을 그대로 둔 채 그 옆에 집을 새로 지어 살고 있다”고 말했다.

프레카즈 대학살 때 숨진 독립군 초대 지도자 아뎀은 게릴라 전투에 능숙해 세르비아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세르비아는 눈엣가시 같았던 야샤리 일가를 제거하기 위해 1991년부터 여러 차례 특수전을 감행했다. 98년 학살로 야샤리 일가가 몰살하자 아뎀은 코소보의 전설적 영웅이 됐고 성난 코소보인의 무장 독립투쟁은 더욱 거세졌다. 잘 때도 군화를 벗지 않았던 아뎀은 덥수룩한 수염과 X자로 두른 탄띠 때문에 코소보의 ‘체 게바라’로 불리기도 한다.

스켄데라이(코소보)=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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