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인종 청소’가 가장 극심했던 코소보 스켄데라이의 묘지에 26일 한 참배객이 꽃을 올려놓고 있다. [사진=전진배 특파원]
그는 대학살 며칠 전부터 외부에 있어 화를 모면했다. 야샤리는 “가족들을 한꺼번에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마음을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대학살 이후 마을을 떠나려는 생각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과 다른 코소보인들에게 아픈 기억을 생생히 남겨주고 싶어서 부서진 집을 그대로 둔 채 그 옆에 집을 새로 지어 살고 있다”고 말했다.
프레카즈 대학살 때 숨진 독립군 초대 지도자 아뎀은 게릴라 전투에 능숙해 세르비아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세르비아는 눈엣가시 같았던 야샤리 일가를 제거하기 위해 1991년부터 여러 차례 특수전을 감행했다. 98년 학살로 야샤리 일가가 몰살하자 아뎀은 코소보의 전설적 영웅이 됐고 성난 코소보인의 무장 독립투쟁은 더욱 거세졌다. 잘 때도 군화를 벗지 않았던 아뎀은 덥수룩한 수염과 X자로 두른 탄띠 때문에 코소보의 ‘체 게바라’로 불리기도 한다.
스켄데라이(코소보)=전진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