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당신이 잠든 사이 이불은‘혁신’중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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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고춘홍 이브자리 대표가 서울 휘경동 매장에서 신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성식 기자]

‘이브자리’는 창업한 지 30년이 넘은 이불 제조업체다. 그러나 단순히 이불만 만드는 업체는 아니다. 섬유의 항균과 냄새 제거에 관한 특허를 갖고 있는 첨단 벤처기업인 동시에 반년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앞서가는 디자인 기업이다. 또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면환경연구소를 세워 이불과 편안한 잠자리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식목 활동을 펼치는 ‘이브랜드’라는 산림 사업 브랜드를 둔 친환경 기업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창업주 고춘홍(58) 대표는 “‘이브자리’를 관통하는 건 아름다움과 건강(기능)”이라며 “건축이 너무 어려워 다른 길을 가려고 했던 것인데 돌이켜 보니 결국 같은 일을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건축이나 이불이나 기본은 아름다움과 기능성 추구란 얘기다.

창업 초기에 사업은 무척 순탄했다. 고 대표는 “사업이 참 쉽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1979년 오일쇼크는 이런 순진한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당시엔 이불을 만들어 도매상에 납품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거래처가 전부 부도 나 이불을 팔 곳이 없어졌다. 건물 몇 채 값을 고스란히 날렸다. 그러나 이때의 위기가 기회가 됐다. 도매상에 납품하다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는 소매 거래로 사업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에게 직접 물건을 팔아야 하다 보니 브랜드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자연히 터득하게 됐다. 당시 많은 사람이 “이불에 무슨 브랜드냐”며 코웃음쳤다. 하지만 고 대표는 확신이 있었다. 도입 초기에 브랜드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마진을 줄여가며 좋은 품질의 이불을 팔았다. 박리다매식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게 먹혔다.

고 대표는 “결국 소비자들이 연구개발(R&D) 비용을 만들어 주더라”며 “끊임없는 R&D 덕분에 이불장사를 블루오션 사업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끊임없이 혁신적인 신상품을 내놓는 3M을 예로 들며 “그만큼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6개월마다 디자인이나 기능이 다른 신상품을 내놓고 있다”고 했다.

북알래스카에 사는 바다오리새의 일종인 ‘아이더 덕’으로 만든 이불속이 좋은 예다. 탐험가 허용호씨가 강연 중에 알래스카 동토에서 살짝만 덮어도 알이 얼지 않는 아이더 덕을 소개하자 고 대표는 바로 이 소재를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살아 있는 아이더 덕의 앞가슴털을 뽑아 이불을 만드는 한 독일 회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날로 기술제휴 계약을 했다. 이 이불속 제품은 한 채에 1900만원에 팔리고 있다.

5000원 받던 베갯속에 부가가치를 더해 30만원짜리 프리미엄 제품으로 만들고, 1000만원대 이불속을 내놓으니 100만원짜리 구스다운 이불속이 팔리기 시작했다. 이후 다른 업체도 30만원짜리 프리미엄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고 대표는 “이브자리의 핵심은 브랜드와 R&D, 네트워크”라고 강조한다. 그는 “본사는 브랜드 가치를 키우고 R&D에 투자해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고, 생산이나 판매는 전 세계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나이키와 우리 회사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글=안혜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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