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목수의 큰마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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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03면

언론계에 떠도는 말 중에 “기자가 기사만 안 쓰면 참 좋은 직업인데” 하는 농담이 있습니다. 서울역 앞 거지부터 청와대 안 대통령까지 기자가 만나지 못할 이가 없으니 얼마나 좋은 인생 경험을 하며 사는 셈입니까. 단, 그렇게 취재한 내용을 적절한 틀에 맞춰 빠듯한 마감 시간 안에 써야 하는 괴로운 책임이 따르는 데서 나온 행복한 푸념이랄까요.

문화재 전문기자로 손꼽히는 예용해(1929~95) 선배는 이런 넋두리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던, 그야말로 이 바닥에서 알아주는 일꾼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민속공예계의 대부(代父)’라는 소리를 들었겠습니까. 발로 뛰는 기자로 이름났던 그는 우리 문화재 조사를 위해 전국을 이 잡듯 뒤지고 다니며 수십만 장의 원고지를 메웠습니다.

이분이 남긴 이야기 중에 잊히지 않는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옛날 경복궁 궁 대목(大木) 일을 마지막으로 했던 한 늙은 도편수(집을 지을 때 총책임을 맡는 목수의 우두머리)를 찾아간 회고였습니다. 키가 육척에 가깝게 훤칠하고 흰 수염을 가슴까지 길게 늘어뜨린 위풍당당한 노인이셨다는군요.

그런데 그 도편수 앞에 서니 도대체 고개를 들 수 없었답니다. 인품이 풍기는 무게와 위엄에 압도된 거지요. 어쨌든 인터뷰가 시작됐답니다. 그분한테 “궁이 수백, 수천 칸인데 그 설계도를 다 어떻게 그리느냐” 했더니 “그런 거 없다”고 하시더래요. “아니 설계도도 없이 집을 어떻게 짓느냐” 되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랬답니다. “그런 것은 내 머릿속에 다 들어 있소.”

한옥이라는 것이 온갖 다양한 부재를 가지고 못을 치지 않고 짜 맞춰 올라가는 공법이라 전체 얼개가 그 도편수의 머릿속에 꽉 차 있다는 설명이었죠. 그렇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궁 대목의 도편수가 될 수 있을까 물었답니다. 노인은 한참 생각하더니 “글쎄, 영의정감은 되어야겠죠” 하더랍니다.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감은 되어야 궁 건설현장의 총감독이 될 수 있다는 거지요. 옛 신분 관념으로 치면 도편수도 장인이요, 장인 역시 천민에 불과한데 이 궁 대목 도편수의 가슴속에는 영의정이나 국무총리와 견줄 수 있는 긍지가 있었던 겁니다.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 여러 분을 만나면서 이 도편수 말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국무총리도 얕볼 수 있는 장인의 저 도저한 정신을 닮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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