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2000>22.합성섬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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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물과 공기와 석탄으로 만들어졌으면서 강철보다 강하고 거미줄처럼섬세한 섬유.』 1938년 「미래의 세계」라는 주제로 열린 뉴욕세계박람회장에서 미국 듀폰사가 최초의 합성섬유 나일론을 발표하면서 내건 이 캐치프레이즈는 부인들을 매혹하기에 충분했다.
나일론의 개발은 가볍고도 질긴 스타킹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39년부터 시판되기 시작한 나일론 스타킹은 여성들 사이에 「신이 내려준 제품」이라 불리며 폭발적 인기를 끌었고 투박하고 잘 늘어지는 면제품을 뒤로 밀어냈다.
이후 나일론의 개발은 과학의 발전을 대변하는 새로운 「연금술」로 받아들여지면서 합성섬유 개발 붐을 일으켜 오늘날과 같은 의류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됐다.
합성섬유는 독일의 화학자 슈타우딩거가 26년 『셀룰로스의 분자는 고분자로 구성돼 있다』고 발표한 때부터 연구되기 시작했다.이후 각종 섬유개발의 바람이 불었고 듀폰사의 카로더스 박사의나일론 개발로 첫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당시 개 발된 나일론은우연의 산물이었다.
카로더스 박사의 조수 한 사람이 쓸모가 없어 폐품함에 보관하고 있던 중합물(重合物)을 실험용 컵에 넣어 가열하다가 컵에 들어있던 유리막대를 밖으로 꺼낼 때 녹은 고분자 물질이 가는 실처럼 유리막대를 따라나오는 것을 발견한 것.
이후 카로더스 박사와 공동연구자들은 37년 용매없이 섬유를 형성할 수 있는 용융방사법(熔融紡絲法)을 개발해 드디어 나일론섬유가 등장하게 됐다.
제2차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나일론의 수요는 공급을 훨씬 초과해당시 뉴욕에서는 하루만에 4백만 켤레의 나일론 스타킹이 팔리는진기록이 수립됐고 나일론 스타킹을 사려고 백화점 앞에서 밀고 당기는 여인들의 격전이 신문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동양 최초의 합성섬유는 한국인에 의해 발명됐다.
39년 일본화학섬유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이승기(李升基.在北)박사가 최초의 폴리비닐알콜(PVA)섬유를 개발해낸 것.
이때까지 세계 견사(絹絲)생산량의 80%를 차지하면서 그 대부분을 미국에 스타킹용으로 수출했던 일본은 나일론의 등장을 견사공업의 「교수형선고」로 인식해 이에 대항할 합성섬유 개발에 열을 올렸고 李박사가 그 첫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
현재 세계 합성섬유 생산량의 65%이상을 차지하며 신제품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폴리에스테르 섬유는 원래 카로더스 박사팀에의해 나일론보다 먼저 개발될 뻔했다.
그러나 듀폰사가 매우 우수한 성질을 보인 나일론의 개발에 노력을 집중했기 때문에 연구가 사장됐다가 41년 영국의 윈필드와딕슨이 그 연구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폴리에스테르 섬유(테릴렌)개발에 성공한 것.
나일론.폴리에스테르 섬유와 더불어 3대 합성섬유중의 하나인 아크릴섬유도 2차대전 중에 개발됐다.
이 섬유는 44년 듀폰사가 아크릴로니트릴에서 아크릴섬유를 얻 내는데 성공해 48년 최초의 아크릴 섬유 「올론」이 탄생했다. 이후 합성섬유는 50년대 중엽부터 생산.소비가 현격하게 신장돼 현재는 세계 섬유수요량중 4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6.25 전란중 미군에 의해 처음 합성섬유의 존재가 알려졌다.
당시 물자가 부족한 전시상황에 등장했던 나일론섬유로 짠 양말은 아무리 신어도 해지지 않아 큰 인기를 끌었고 전구를 속에 넣고 꿰메 신던 면 양말을 급속도로 대체했다.
이후 63년 한국나이론(現 코오롱)이 美 컴텍스사와의 기술제휴로 나일론 생산을 개시하고 동양나이론.선경인더스트리등이 속속참여하면서 우리나라는 94년 현재 연간 1백70만t 정도의 합성섬유를 생산해 세계5위의 합성섬유 생산국이 됐다 .
朱宰勳기자 다음회는 총기(銃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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