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값이 제품값보다 비싸져…철강 시장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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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을 생산하는 J사는 지난 1월 말부터 조업을 중단한 상태다. 철근을 만드는 데 쓰는 빌릿이라는 철강 반제품의 가격이 완제품인 철근 값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2002년 t당 260달러 선이던 것이 지난 1월에 400달러까지 올랐다. 철근은 t당 45만원에 팔았는데 만들수록 손해를 보게 된 것. 회사 관계자는 "빵보다 비싼 밀가루로 빵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철강 가격의 세계적인 폭등 현상으로 국내 철강 시장이 일대 혼란을 겪고 있다. 중국이 원자재를 싹쓸이해 가면서 국제 고철 값이 오르고, 이를 원료로 생산되는 빌릿 등 철강 반제품도 도미노처럼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보철강은 3일 철근 가격을 t당 52만3000~53만4000원으로 4만~4만2000원 인상한다고 밝혔다. 한보는 고철 수입 가격이 최근 두달 새 50% 남짓 올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철근 값을 올리기는 했지만 원자재 가격 인상을 덜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INI스틸.동국제강 등도 철근이나 후판 등의 가격을 계속 인상하고 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업체들은 원자재를 확보하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924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5.7%가 원부자재 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철강 제품을 취급하는 대부분 업체(96.2%)가 원료 부족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산업자원부는 3일 원자재의 수급 안정을 위해 고철과 철근에 대한 수출제한 조치를 오는 8일부터 수급이 안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취하기로 했다. 또 이들 제품을 매점매석하는 행위를 단속하고 가격이 30% 이상 뛴 페로실리콘 등 일부 제품에는 할당관세를 인하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철근의 경우 INI스틸.한보철강 등 제강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수출 물량을 내수로 돌려 6만7000t을 국내에 더 공급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고철.비철금속.곡물 등 원자재를 수입해 1차 가공하는 15개 업체에 대한 매점매석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가 인위적으로 국내 출하량을 조절해 폭리를 취하거나 판매가격을 지나치게 높이 책정했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불공정 행위가 적발되면 매출액의 3%까지 과징금이 부과된다.

장세정.김영훈.김승현 기자<shyu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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