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원류를찾아서>간디 사상의 고향 인도 뉴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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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인도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를 포함하는 아주 거대한 나라였던 시절,인도 어린이들은 인도 영토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을 연결하는 인도 대륙의 최남단과 히말라야 북쪽 끝을 연결해 만나는 점으로 뉴델리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냈다고 한다.이처 럼 뉴델리는 방패처럼 생긴 인도의 지리적 중심이지만 뉴델리에서 북으로 조금만 가면 히말라야의 산줄기가 나오고 남으로 조금만 내려가면라자스탄 사막이 펼쳐져 뉴델리 일대는 인도의 동서를 연결하는 회랑지대를 이루고 있다.특히 이곳은 야 무나 강의 하상(河床)이 넓어 건기에는 걸어서도 강을 건널 수 있기 때문에 북서방면에서 쳐들어오는 침략자들은 항상 이곳을 노렸다.
8세기 초엽에 이슬람 세력이 밀어닥쳤다.이슬람 세력과 힌두교도 사이에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3백여년이나 계속되었다.1192년에 와서야 비로소 힌두교도들의 저항을 꺾은 이슬람 노예 왕조의 술탄 아이바크는 힌두교도에 대한 승리를 자축 하기 위해 뉴델리 근처에 있던 힌두교 사원을 허물어버리고 거기서 나온 돌로 모스크와 광탑(光塔)쿠탑 미나르(Qutab Minar)를 세웠다.높이가 73m나 되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는 이 광탑은 실로 뉴델리가 인도의 중심임을 알 리는 등대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지금 뉴델리의 구시가지인 델리 한복판 야무나 강변에 우뚝 서있는 붉은 성(Red Fort)과 거대한 이슬람 사원 자미 마스지드(Jami Masjid)는 타지마할을 세운 것으로 유명한무굴제국의 샤자한 황제때 건설한 것이다.
붉은 성 정문 앞에 펼쳐진 수십만평의 잔디밭에는 평일의 대낮이건만 수천명의 행려자들이 쉬고 있었다.우두커니 앉아 있는 자들도 있었고,잠자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인도 정부에서 제공한 인도산 소형차를 타고 온 내가 돈이 있어 보였는지 더러는 『바시,바시』하며 구걸하기도 하였다.비록 가난할지라도,그 누구하나비굴해 보이는 사람이 없는 것이 놀라웠다.모두가 스스로 고행길을 택한 것인지 그들의 모습에는 선량함이 어려있었다.
오후에는 야무나 강변에 있는 간디 기념공원 라지가트(RajiGhat)를 찾아갔다.비폭력에 의한 저항운동을 벌여 인도를 독립시킨 마하트마 간디가 1948년 1월30일 힌두교 극우파 청년에게 살해된 후,그의 시신이 화장된 곳이다.그 의 재는 힌두교의 관습에 따라 야무나 강으로 흘려보냈지만,그의 시신을 불사르던 불꽃은 근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불타고 있다.
그 근처에 간디박물관이 있었다.수수해 보이는 아담한 2층 건물에 소장된 유품 하나하나는 성웅 간디의 사상과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그가 재배한 목화로 손수 실을 뽑던 물레와 그 실로 옷감을 짜던 조그만 베틀이 있었고,그가 쓰던 안경과 군중을설득하러 나설 때 사용하던 지팡이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간디옹이 어려서 학교 다닐때의 일이었답니다.하루는 그가 시험을 치르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의 답안이 너무나 형편없는 것을 보고 옆 학생 것을 보고 쓰라고 하자 소년 간디는 고개를 저었답니다.그리고 나서 후에 선생님으로부터 병신같 은 애라고 꾸지람을 받았답니다.』 어느 위인전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다.
어느모로 보나 너무도 평범했던 그가,전 인류의 추앙속에 10억인도인을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이끌어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던 힘의 정체는 무엇이었던가.
박물관에서 판매하고 있는 한 책자에서는 그 힘의 원천을 「진리에의 고수(Satyagraha)」라고 설명하고 있었다.그러나진리를 믿는다고 말한 사람이 어찌 그뿐이랴.이 「거지 차림을 한 위대한 정신」속에는 실로 진리 이상의 그 무 엇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1915년에 그가 설립한 「진리의 도장(Satyagraha Ashram)」에서는 진실.불살생.금욕.무소유.정직.절제.봉사등을 덕목으로 삼고 있었다.비하르 평원을 누비며 「진리에의 고수」를 역설했던 그는 석가나 마하비라와 같은 인 물들이 쌓아올린 사상과 철학 위에 서 있었다.그가 가는 곳은 어디에나 수천수만의 인파가 모여들어 이 「거지차림의 위대한 정신」에게 「바푸(Bapu.아버지)」를 외쳤다.
뉴델리 공항으로 가는 날 아침,정부청사로 쓰고 있는 구 총독부 앞에서 쏜살같이 질주하는 십여대의 자동차 행렬 때문에 내가탄 앰배서더 승용차는 잠시 정차해야 했다.
『지금 수상과 각료들이 대통령궁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자동차들은 내가 탄 차와 같은 종류의 소형차였다.비하르 평원을 달릴 때 발동이 꺼져 이따금씩 말썽을 일으키던 그 소형차는 인도제라고 했다.말이 승용차지 오토바이 엔진 위에 간단한 차체를얹은 것이었다.
둘러보면 번듯한 건물이라곤 이슬람 세력과 영국식민통치자들이 지어 놓은 것들 뿐,국민도 지도자도 모두 다 가난한 나라.그러나 인도에게는 성웅(聖雄)간디가 있다.시성(詩聖)타고르가 있고,성녀(聖女)테레사 수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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