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 김윤아 3년 만에 두번째 앨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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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8년차에 접어든 혼성 4인조 그룹 '자우림'은 한국의 대표적인 모던 록 밴드다. '자주빛 비가 내리는 숲'(紫雨林)이라는 뜻의 밴드 이름답게 '헤이헤이헤이''일탈' 등 히트곡을 통해 몽환적이랄까 서정적이면서도 활달한 록 음악을 선사해왔다.

자우림이 오랜시간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데는 보컬을 맡은 김윤아(30)의 공이 크다. 그녀의 이미지는 한두마디로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늘씬한 키와 매력적인 미소로 무대를 휘어잡는 모습에선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지고, 지적이고 품위있는 자태는 그녀의 숨길 수 없는 성적 매력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여기에 능숙하게 구사하는 영어와 일본어 덕에 이 국제화시대에 누구나 부러워할 세련된 감각의 소유자로 자리매김한다. 1996년 데뷔 때부터 그녀를 지켜봤던 홍대 앞 라이브 클럽 DGBD의 이현숙 사장은 "얄미울 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말한다.

그녀의 음악도 중층적이다. 그룹 자우림의 보컬로선 경쾌하고 밝은 인상의 노래를 불렀지만 3년 전 처음 냈던 솔로 음반에선 슬픔과 애상이 관통했다.

김윤아가 두번째 솔로 앨범 '유리가면'을 5일 선보인다. 이번에도 1집과 마찬가지로 내면 세계로 침잠한 듯 보인다. 아니 1집보다 더 깊이 내려가 서정을 길어올린다. "1집이 투명하고 푸른 색채였다면 2집은 검푸른 벨벳의 느낌을 담았다. 궁극적으로 내 자신을 바라보고자 했지만 정작 나의 진짜 모습이 보일까봐 오히려 외면하고 싶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아리송한 답변 같지만 음반을 듣다 보면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싶게 복합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진면목도 여실히 드러난다. 작사. 작곡은 물론 프로듀싱과 편곡도 혼자 도맡았다. 독일 감독 베르너 파스빈더의 영화에서 제목을 따온 음반의 첫째곡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피아노와 탬버린만으로 악기를 편성해 묘한 울림을 전한다. 타이틀곡인 '야상곡'도 강렬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곡이다.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창작자의 고뇌로' 온전히 혼자 완성해내는 여성 뮤지션이 국내에 그녀 외에 누가 있을까. 남성 위주로 짜여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이를 관철해 냈다는 점에서도 그녀는 분명 녹록지 않은 고수다.

2집 음반을 가로지르는 기조는 탱고 리듬이다. 탱고는 춤곡이지만 속에 멜랑콜리(우울함)를 내장하고 있는 음악이다. "탱고를 추는 남녀는 결코 만나지 않는다. 사랑하면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정서를 노래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슬픈 음악은 자칫 하염없이 밑으로 처져 처량맞고 궁상스러울 수 있다.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고 큰 울림으로 승화할 수 있게 된 건 역시 그녀의 절제된 목소리 덕분이다. 록이 아닌 장르에서도 적절한 음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팝음악의 정통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가수다.

자우림은 지난해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활동했다. 김윤아의 이번 음반도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발매된다. "무언가 결핍된 것이 있어 음악을 하는 것 같다. 음악을 하지 않는 날이 오면 행복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고 말하는 그녀. 하지만 팬들은 그녀의 행복 대신 그녀의 음악을 바라고 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자기 색깔을 유지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음악이 깊어지는 만큼 김윤아의 무대도 점점 넓어지고 있지 않은가.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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