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저자는말한다>"일본의 포로"게이번 도서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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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일본군 포로들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때는 약 10년전의 일이다.그전에 나치나 일본인들의 학살행위에 대해 들은 바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당시 나는 역사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캔버라에 있는 호주 국립大에 잠시 돌아갔었다.그런데 우연히도 2차대전때 포로로 잡혀 고생한 사람들이 쉬지않고 자신들의 경험담을 나누는 것을 듣게 됐다.이들의 육성은 마치 하나의 계시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나의 주요 목적은 일본을 비난하려는 것만은 아니다.평상시보다 서로에 대한 잔혹한 행위가 공개적으로 허용되는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가를추적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조사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확인했다.일본인들이태평양 전쟁 이전에는 포로들에게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가혹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세기초 러-일전쟁 발발 당시 일본군은 포로들에게 특기할만한 고문을 가하지 않았다.또 1920년 러시아 혁명이후 미국과함께 시베리아에 들어갔을 때도 포로들에 대한 인간적 대접으로 국제적십자로부터 칭찬을 받았다.자신들은 개화된 국민이며 일본의군부도 순수한 문화전통을 이어받은 엘리트집단임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전통은 2차대전에 접어들면서 밑바닥부터 무너져갔다.군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순수 무사계급 출신이 독점하던 장교들의 출신성분이 하층 농민이나 기회주의 성향이 강한 중산층으로까지 확대됐다.자기나라에서 한번도 어깨를 제대로 펴지 못했던 이들에게 갑자기 포로들에 대한 무제한의 통제권이 넘겨지자 그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신들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수십만명의 장정들이 미친듯 동남아시아로 달려갔고 일본열도전역에는 일종의 광기가 짙게 드리웠 다.쉽게 말해 그들은 모두군인보다는 칼을 빼든 자객의 무리에 가깝게 변질된 것이다.처음부터 방향을 잘못잡은 군국주의의 무리한 정복욕이 빚은 역사의 교훈이라고 하겠다.
〈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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