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아슬아슬한 선두… 오바마 맹추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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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수퍼 화요일'에서도 분명한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22개 주에서 실시된 경선에서 오바마는 힐러리보다 많은 지역에서 이겼지만 대의원 확보 경쟁에선 다소 뒤졌다. 힐러리가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매사추세츠 등 대의원이 많이 걸린 지역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사람에겐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오바마는 상승세를 유지하기 위해, 힐러리는 오바마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다음 지역 경선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이다. 두 사람이 일진일퇴를 거듭할 경우 당 대통령 후보직은 8월 전당대회 현장에서 정해질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수퍼 화요일 결과는 힐러리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어느정도 입증했다. 아이오와와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승리,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가문의 집단 지지를 바탕으로 무서운 상승세를 보인 오바마 돌풍은 수퍼 화요일 전날인 4일 캘리포니아, 뉴저지 등 힐러리의 강세 지역까지 삼킬 것이라는 여론조사 등이 나왔으나 힐러리는 그게 틀렸다는 걸 보여줬다.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20여년 간 구축해 온 기반이 모래성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당원층에서 힐러리가 오바마를 앞선 건 그의 지지 기반이 여전히 강하다는 걸 말해 준다.

힐러리가 캘리포니아, 뉴저지 뿐 아니라 매사추세츠에서 승리한 건 민주당이 강세인 지역에서 그의 조직력이 튼튼하다는 걸 뜻한다. 매사추세츠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존 케리 상원의원의 지역이다. 두 사람은 모두 오바마를 지지했다. 이곳의 데발 패트릭 주지사도 오바마를 도왔다. 그런 상황에서 힐러리는 상당한 격차로 오바마를 따돌리는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힐러리는 불안해 보인다. 그는 지역구인 뉴욕의 인접지역인 코네티컷과 델라웨어를 잃었다. 앞서 가던 미주리에서도 비록 1%포인트 차이지만 역전패했다. 열흘 전만 해도 힐러리의 우세 지역이 많았지만 오바마는 그걸 반대 상황으로 바꿔놨다.

열흘 전 10%포인트 안팎으로 앞서 가던 전국 지지율의 우세도 사라졌다. 수퍼 화요일에 힐러리가 얻은 득표율은 49%로, 오바마에 겨우 1%포인트 앞섰다. 게다가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아닌 코커스(당원대회)를 실시한 곳에선 모두 졌다. AP통신은 "수퍼 화요일 이후 오바마가 더욱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힐러리가 이런 분위기를 바꿔놓지 못할 경우 남은 경선에서 오바마에게 끌려 다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바마는 1월 한달 동안 무려 3200만 달러를 모았다. 그 돈으로 수퍼 화요일에 경선을 실시하는 거의 모든 곳에 광고를 했다. 같은 기간 동안 힐러리에겐 1300만 달러가 들어 왔다. 그도 큰 돈을 모은 것이지만 그 규모론 오바마의 돈 공세를 당해내지 못했다. 수퍼 화요일 이후에도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힐러리는 힘든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는 5일 "TV토론을 자주하자"고 말했다. 오바마의 TV광고 공세를 당해 내려면 매스컴을 활용하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 이런 제안을 했다고 AP통신은 분석했다.

사상 첫 흑인 미국 대통령을 꿈꾸는 오바마는 수퍼 화요일 투표가 끝난 직후 시카고에서 "우리의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린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오바마 진영은 수퍼 화요일의 승부에서 사실상 이겼다고 보고 있다. 오바마 측은 이번 경선에 참여한 사람들 중 52%가 후보자 선택의 기준으로 '변화'를 가장 먼저 꼽았다는 여론조사가 나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슬로건 경쟁에서 힐러리를 이긴만큼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조사에서 힐러리가 내세우는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23%였다고 한다.

◇남은 승부처 어디인가 =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2025명의 대의원을 확보해야 한다. 8월 말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총 대의원 4049명의 과반을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치러진 경선 결과와 수퍼 화요일 성적을 합산할 경우 힐러리가 확보한 대의원 숫자는 오바마보다 80명 정도 많다. AP통신은 미 동부 시각으로 6일 오전 10시 현재(한국 시각 7일 자정) 현재 힐러리가 845명, 오바마가 765명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힐러리와 오바마는 9일 서부의 워싱턴 주와 남부의 루이지애나주, 중부의 네브라스카 주에서 다시 격돌한다. 이곳에선 오바마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12일 실시될 다가온 워싱턴 DC와 버지니아, 메릴랜드주 프라이머리도 시선을 끌고 있다. 세 곳에 걸린 대의원 238명. 이곳의 전적에 따라 두 사람의 격차는 확대될 수도, 좁혀질 수도 있다. 이 세 곳 역시 오바마의 우세가 예상된다. 워싱턴 DC와 매릴랜드, 버지니아 남부엔 흑인이 많기 때문이다. 힐러리는 3월 4일 실시될 오하이오와 로드아일랜드, 텍사스, 버몬트등 4개 주 경선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미니 수퍼 화요일'로 불리는 이날 선출되는 대의원 수는 444명. 힐러리는 이중 큰 곳인 오하이오와 텍사스에서 이겨 오바마의 기세를 꺾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만일 50개 주의 경선이 다 끝나도 승부가 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땐 796명에 달하는 이른바 '수퍼 대의원'이 어느 쪽으로 쏠리느냐가 중요하다. 1984년 경선 때부터 도입된 '수퍼 대의원'은 당의 연방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 당 전국위원회 간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유권자들의 투표로 선출되는 대의원과 달리 특정 후보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아도 된다. 힐러리는 현재 수퍼 대의원 확보 경쟁에서 오바마에 앞서 있다. 하지만 향후 경선의 분위기가 오바마 쪽으로 기울 경우 오바마의 손을 들어줄 수퍼 대의원이 속출할지 모른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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