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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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달거리 동안은 내내 편두통을 앓곤 했다.몇십년간 길례를 괴롭혀 온 생리통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두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 면류관에 비긴 것은 영국의 여류작가 캐서린 맨스필드다.맨스필드다운 감각적인 표현이다.
길례의 면류관은 반쪽짜리다.그것도 엉겅퀴의 햇풀로 엮은 자잘하나 빈틈없는 가시관 같다.
왼쪽 눈이 떠지지 않을 만큼 심하게 아프다.참다못해 산부인과친구를 찾아갔다.
『호르몬주사 맞았어? 골다공증(骨多孔症)예방약이라는 거 말이요.』 친구는 길례의 얼굴을 뜯어보며 물었다.
『아니,그게 뭔데?』 『요즘 갱년기 여성들 사이에 대유행이라오.그 주사 맞은 사람의 태반이 멘스를 다시 봤다나봐.』 『난올드 패션이잖아.』 『갑자기 멘스가 왔다기에 혹시나 한 거야.
어떻든 이 나이에 멘스 있는 것이 정상이니 놀랄 건 없어.그건그렇고 얼굴이 예뻐진 것도 올드 패션이야? 영감님하곤 금실이 좋아졌나보네.』 『금실은! 그 일이 없어진 게 벌써 일년반도 더…』 길례는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아무리 의사 친구지만밤생활 얘기까지 하는 것은 좀 되바라진 듯했다.
그러나 친구는 놓지지 않고 되물었다.
『일년반도 더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원인이 뭔데? 당뇨나다른 병이 있으신 건 아니지?』 차분히 다그치는 의사다운 말투에 길례는 체념하고 남편의 상태를 대충 설명했다.
『참,별난 올드 패션 다 보겠네.요즘 세상에 그런 고민을 안고 일년 끄는 부부는 없다오.웬만한 불능환자는 간단한 주사 주입법(注入法)으로도 바로잡을 수가 있거든.비뇨기과 닥터 한분 소개해 줄테니 온 김에 한번 만나뵙고 가지….』 『요다음에-.
』 그런 일로 남자 의사를 만나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멋쟁이 닥터야.언제 날짜 잡아 영감님 모시고 와서 같이 만나뵙는 게 좋겠다.』 점심이나 하고 가라 해서 병원식당에 들렀다. 첨단시설로 새로 꾸며진 이 종합병원 안은 일급 호텔의 로비나 라운지처럼 청결하고 아늑했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의사 친구가 호들갑을 떨었다.
『닥터 최! 방금 선생님 얘기하는 중이었어요.자,인사하세요.
이 쪽은 우리 친구 정길례씨.화가예요.전공은 누드.물론 가정주부고….』 식사하다 말고 중년신사가 일어난다.아까 친구가 소개해준다던 비뇨기과 의사였다.중후한 인상이다.
『마침 잘됐네.우리 여기 앉아도 되죠?』 친구는 길례를 닥터최 앞에 주저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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