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경의 나를 경영하기] '소유의 종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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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왜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게임에 열광하는가? 게임에 빠진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현실세계에서 보잘것없는 자신이지만 게임에 접속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자신이 정의의 사자요, 왕이라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0과 1의 비트로 되어 있는 가상의 세계에 접속함으로써 게이머들은 극도의 만족과 효용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듯 단지 접속하는 것만으로 만족을 느낀다니 일견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이와 비슷한 일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당신이 멋진 자동차를 샀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실 당신은 여러 가지 부품으로 구성된 자동차 자체를 원했다기보다는 그 자동차에 접속하면서 느끼는 상쾌한 승차감과 편리함을 원했던 것은 아닌가. 또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보자. 어쩌면 당신은 그 사람 자체보다는 그 사람과 접속하면서 느끼는 야릇한 감정과 추억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 사람이 몇%의 지방과 물로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물질적 구조에 대해서 당신은 관심조차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어떤 대상물을 원할 때 그 대상물의 물적 구조 자체를 원한다기보다 그 대상물과 접속하면서 느끼는 추억과 효용을 원한다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만 해도 이러한 것들을 느끼기 위해선 대상물을 소유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실제로 가지고 있어야 접속할 수 있고 그래야 추억과 효용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과학이 점점 발달하면서 그 대상물을 소유하지 않고도 접속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했다. 이제 '소유의 종말'의 시대가 서서히 그러나 아주 갑작스럽게 우리 주변에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 머니 덕분에 지폐를 소유하지 않고도 물건값을 지불할 수 있고, 직접 그곳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에만 접속하면 세계 각국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과학의 발전은 몰상식하게도 아예 실존하지 않아도 접속만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는 어쩌면 오시이 마모루의 영화 '아바론'에서처럼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나오기를 영원히 거부할지도 모른다.

이런 현상은 소유의 시대로 대표되던 산업사회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산업사회를 통해 부흥했던 자본주의의 기나긴 여정을 끝내는 것이다. 그럼 이런 사회에선 누가 과연 권력을 잡고 돈을 벌게 될까? 제러미 리프킨의 책 '소유의 종말'을 보면 그에 대한 답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된 순간 어쩌면 당신은 전율에 가까운 섬뜩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김의경 <무한투자 벤처기업 투자심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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