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브리핑으로 본 각국 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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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 제2차 6자회담에서 드러나는 각국의 브리핑 양상이 제각각이다. 각국 브리핑의 내용과 형식은 회담 참가 해당국가의 회담장 내 위상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는 것이 중평(衆評)이다.

1차 회담의 양상과는 달리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두드러진다는 것이 2차 회담을 지켜 보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평가다.이에 따라 한국의 브리핑이 회담을 취재하는 국.내외 기자들에게는 가장 인기다.'실질적인 주도형'답게 한국 대표 이수혁 차관보의 브리핑 때에는 회견장이 발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빈다.

베이징 서북부의 메리오트 호텔에 차려진 한국 프레스 룸을 늘 떠나지 않는 한 일본 기자는 "한국의 브리핑이 가장 핵심이다.여기서 듣고 나면 회담 돌아가는 분위기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실제 한국측 브리핑은 전체 회의가 끝난 뒤 다른 나라에 앞서 가장 빨리 열린다.한국 보도진 60여명 외에 중국 신화(新華)통신을 비롯한 중국의 각 매체 기자들과 일본,러시아,미국,유럽의 유수 기자들이 늘 한국 대표의 브리핑에 신경을 곤두 세운다.

중국은 중재자적인 입장을 점잖게 유지하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국제적 위상을 은근히 자랑하는 '과시형'이다.회담장인 댜오위타이(釣魚臺) 옆 호텔에서 열리는 중국 브리핑에는 역시 중국 국내외 기자들이 많이 몰린다.류젠차오(劉建超) 중 외교부 대변인이 주재하는 브리핑에서는 회담의 핵심적인 결과와 중국측의 입장 등이 비교적 소상하게 전달된다.

중국 기자들의 일부 질문은 대개 "중국이 힘을 많이 기울인 만큼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봐야 되지 않겠느냐"는 내용이 들어간다.劉대변인의 설명은 팩트에 입각해 비교적 충실하게 진행되는 한편 이를 취합하고 조정하는 중국 왕이(王毅) 수석대표의 입장이 소상하게 들어간다.리자오싱(李肇星)외교부장,탕자쉬안(唐家璇)외교 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의 회담대표 만찬 및 면담 소식도 상세히 곁들이면서 회담을 전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중국측의 입장을 대변한다.

하지만 25일 개막식 장면을 국영 중앙텔레비전(CCTV)가 단독 중계하면서 중국 王대표의 얼굴을 지나칠 정도로 집중 부각하면서도 사실상 이번 회담의 핵심 관건인 북측 대표 김계관(金桂寬) 부상의 발언 장면을 놓쳐 방송 기자들로부터 "좀 너무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은 '올빼미 형'이다.25일 첫 전체회의가 끝난 뒤 밤 10시(한국시간 오후 11시)에 느즈막히 브리핑을 열었다.회담의 본 취지와는 다소 떨어진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을 회담장에서 거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만큼 모든 게 조심스러운 분위기다.밤에 열린 브리핑에서도 충실하게 회담 내용과 자국의 입장을 거론하지 않은 채 대충 '때우기 식'으로 넘어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일부에서는 "외국 기자와 일본 기자를 따로 분리해 별도 브리핑을 하는 것 같다"는 '이중성'의 혐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북한은 역시 종래대로 '게릴라 식'을 선보였다.회담 초반에 진지하게 임했던 것으로 알려진 북 대표단은 회담이 막판 '공동성명 작성' 단계로 넘어가는 26일 오후 8시50분에 급기야 보도진들을 향해 '한 방' 날렸다.기습적으로 일본과 미국 기자들을 중심으로 몇 매체들에게 급히 연락,북 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입장을 공격하는,다분히 전술적 의도가 담긴 성명을 발표한 것.이 때문에 회담에 막바지 고비에 들어선 27일부터는 북한의 기습적 기자회견을 걱정하는 기자들이 북측 대표단의 움직임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은 북한 대표단에게 "할 말 먼저 다 해 보라"는 식의 '뚝심형'이다.브리핑도 따로 없다.일단 다 듣고나서 보겠다는 식이기 때문에 별다른 평론과 설명을 붙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8월 1차 회담에서 실제적인 위상과는 상관 없이 회담의 '입' 역할을 즐겼던 러시아는 이제 '침묵형'으로 변했다.1차 회담에서 지나칠 정도로 많이 소식을 흘리는 바람에 다른 참가국들로부터 무언의 경고를 받지 않았느냐는 추측이 돈다.다른 한편에서는 "문제의 핵심이 북.미에 있고,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도 한국과 중국이 큰 역할을 하는 반면에 실질적인 역할이 부족하기 때문에 할 말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kj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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