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수 감독 김호·조광래 … 백제-가야 더비 축구장 달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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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땐 싸우더라도…‘동양의 나폴리’ 통영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전통찻집에서 얘기를 나누던 조광래 감독<左>과 김호 감독이 파안대소하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조광래(54) 감독의 승용차는 고속도로를 씽씽 달렸다. 조 감독의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김호(64) 감독의 고향 통영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충무관광호텔에 도착하자 김 감독이 활짝 웃으며 반겼다. 시내로 나가 전통찻집에 자리를 잡았다.

 조 감독이 말문을 열었다. “1996년에 여기 왔을 때 선수들이 집단 식중독에 걸려 혼났죠.”

김 감독이 받았다. “맞아. 그리고 세월이 흘러 12년 만에 다시 온 거네.” 96년이면 김 감독이 수원 삼성 창단 감독으로, 조광래가 수석코치로 일하던 때다.

다정했던 두 사람은 98년 견해 차로 대판 싸운 뒤 갈라섰다. 삼성에서 나온 조광래는 99년 안양 LG 감독이 되면서 ‘수원-안양 더비’가 펼쳐졌다. ‘절대 질 수 없는’ 라이벌전이 5년간 계속됐다. 이후 4년간 야인 생활을 한 두 사람은 지난해 대전과 경남 FC를 각각 맡으면서 K-리그에 돌아왔다.

키프로스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인 13일 조 감독이 통영에서 겨울훈련 중인 김 감독을 방문했다.

 ◆“우리는 수준이 맞는 라이벌이었다”

 왜 그렇게 피 터지게 싸웠는지 묻자 김 감독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두 그룹 간에 경쟁 의식이 워낙 강 했어요. 그리고 라이벌이 되려면 수준이 맞아야 되거든. 니폼니시 감독(당시 부천)이 떠나면서 경기를 재밌게 할 상대가 없었어. 그때 조 감독이 와서 맞수가 생긴 거지.” 조 감독이 맞장구쳤다. “저도 니폼니시가 떠나면서 허전했는데 김 감독님과 ‘두뇌 게임’을 하게 돼 재밌었죠. 밖에는 계속 사이가 나쁜 것으로 비쳤지만 속으로 존경심은 갖고 있었어요.” 두 사람은 K-리그에서 10승1무10패로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조 감독은 “우리 두 팀은 무조건 ‘공격 앞으로’였죠. 사람들이 ‘저 둘은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를 할 정도였으니까”라고 했고, 김 감독도 “우리는 경기를 재밌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관중이 열광한 거지”라고 받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종수를 막아라”

 상대 팀이 올해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릴까를 물어봤다. 조 감독이 “대전은 6강 플레이오프는 충분하겠지만 우승을 노리면 감독님이 오래 못 사실 것”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폭소를 터뜨린 뒤 “다른 구단들이 골잡이들을 빼 가는 바람에 힘들었어. 그래서 스트라이커를 따로 두지 않는 ‘벌떼 축구’ 전술을 쓸 거야”라고 했다. “그 전술을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김 감독은 “(벌떼가) 못 오도록 약을 뿌리면 되지”라며 찻집이 떠나가도록 크게 웃었다. 이어 “조 감독은 지략이 뛰어나고 성실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올릴 거야”라고 덕담을 했다. 대전에 가장 무서운 선수가 누구냐고 묻자 조 감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종수”라고 답했다. 고종수는 수원 창단 때 김호-조광래 콤비가 만든 작품이다.

 ◆추풍령 더비? 백제-가야 더비?

 두 사람의 ‘신라이벌전’에 어떤 이름을 붙이면 좋겠냐고 물었다. 김 감독은 “충청도에서 경남으로 넘어가는 ‘추풍령 더비’가 어떠냐”고 했다. 조 감독은 “대전은 백제의 중심이고, 경남에는 가야가 있었으니 ‘백제-가야 더비’도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조 감독은 “거리가 좀 멀어도 경기가 재미있으면 밤차 타고도 올 겁니다. 올해는 국내 선수들에게 기회를 더 많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심판이 정직하게 판정을 하고, 선수를 해치려는 파울은 엄벌해서 경기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김 감독이 “전지훈련 잘 다녀오라”며 조 감독의 등을 두드려 줬다. 조 감독도 “선배님 건강하십시오”라며 허리를 굽혔다. 둘은 12년 전 다정했던 선후배로 돌아가 있었다.

글=정영재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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