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대 장고가 만든 패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2국 하이라이트>
○·박영훈 9단(한국) ●·구 리 9단(중국)

장면도

장면도(231~248)=20여 수 정도 건너뛰어 231부터 본다. 그동안 중앙에서 끝내기가 이어졌고 지금 보는 장면은 거의 막판이다.

승부는 반집. 누가 이겼을까. 흑이 종반에 저지른 그 무수한 실수를 생각한다면 백이 이겨야 맞다. 그래야 제대로 된 드라마다. 하지만 김지석 4단은 “아쉽지만 이 판은 흑의 반집 승”이라고 말한다. 아주 쉬운 수순이라 아마추어도 여기 와서는 100%라고 한다.

한데 이 대목에서 구리 9단이 갑자기 대 장고에 접어들었다. (판이 하도 좋았던 터라 그는 아직도 시간이 철철 남아 있었다) 모두들 의아한 시선으로 모니터를 주시하건만 구리는 좀처럼 착수하지 않았다. 훗날 밝혀진 것이지만 구리는 정상적으론 반집 패라고 계산했고, 그래서 반집이라는 보물을 찾아 미친 듯 광야를 헤매고 있었다.

그의 손이 드디어 231에 떨어졌다. 232와 교환돼 반집 손해. 다시 233이 떨어졌다. 역시 반집 손해. 그의 의도는 235, 237에서 드러났다. 백의 자충을 이용해 수를 내려는 것. 적어도 가일수를 많이 해야 하기에 손해는 없다고 본 것인데 이 모든 게 착각이었다. 수상전을 해 봐야 ‘양패’임을 한눈에 간파한 박영훈 9단이 손을 척 빼고 144로 손을 돌렸고, 이때서야 구리도 사태를 알았다. 그가 손에 쥔 것은 보물이 아니라 신기루였다. 이 판은 285수까지 진행돼 백이 반집을 이겼다.

박영훈 9단의 종반 추격이 컴퓨터처럼 정확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이 판은 구리가 자멸한 것이다. 이로써 승부는 1대 1이 됐다. (238=△, 241=231)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