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포기에 도움 된다면 언제든 김정일 만날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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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 우선의 실용주의 외교와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한 남북관계의 실질적 발전을 양대 축으로 하는 차기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윤곽이 14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회견에서 드러났다.

 이 당선인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어디라도 달려가 일을 해내고자 한다”고 전방위 실리 외교를 강조했다. 또 ▶한·미 동맹 재정립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 강화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한·미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이 북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미 관계와 남북, 북·미 관계를 ‘선순환 구조’로 파악한 것이 눈에 띈다.

 이는 차기 정부가 한·미 동맹에 치중해 남북 관계가 냉각될 것이란 일각의 우려를 감안한 발언이다. 한·미 동맹 강화가 대북 봉쇄로 이어지지 않고 남북, 북·미 관계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측에 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 당선인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면서도 “북핵을 포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이란 전제를 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장소는 우리 쪽에서 만나는 게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해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는 않겠다는 대북관을 드러냈다.

다음은 모두발언과 일문일답 중 외교안보 관련 부분 요지.

 “글로벌 코리아를 위한 장정은 잠시도 멈출 수 없다. 변환의 질서 속에서 한·미 동맹을 미래지향적으로 정립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돼야 한다. 일본·중국·러시아는 모두 우리나라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되는 나라들이다.

 남북관계도 실질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6자회담에서 합의된 것을 성실히 행동으로 지켜나간다면 남북협력의 시대는 앞당겨질 수 있다. 남북관계를 순조롭게 풀기 위해서도 주변국들과 남북한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져야 한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대미관계는 활성화되겠지만 대북관계가 경색될 것이란 전망이 있는데.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긴밀해진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소원해질 것이라는 등식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는 남북관계를 위해서 한·미 관계가 다소 소홀히 된 점도 있었지만, 한·미 관계가 돈독해지는 게 오히려 남북관계를 더 좋게 만들 것이고, 그렇게 한·미 관계가 좋아지면 북·미 관계도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합의사항의 후속조치와 향후 남북교류, 경제협력을 어떻게 추진할 생각인가.

 “현 정권이 지난해 10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사항이 있지만 원론적인 수준이다. 구체적이지 않다. 사업 타당성, 재정 부담성, 국민적 합의의 관점에서 남북 간 합의사항을 이행해 나갈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는가.

 “남북 정상회담을 임기 중에 한 번씩 하는 것은 극히 형식적이다. 한·일 정상회담이나 한·미 정상회담 등 여러 나라 정상들은 1년에 한두 번씩 만난다. 마찬가지로 남북 정상이 북핵을 포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남북에 다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격식을 차려 임기 중에 한 번 만난다는 것보다는 언제나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다음에 만난다면 장소는 우리 쪽에서 만나는 게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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