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유엔 사무총장은 감탄을 자아내거나 박수갈채를 받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부지런하게 일하고 끈덕지게 설득하는 뭔가를 갖고 있다.”
“카리스마 부족을 날카로운 통찰력과 끈기로 극복”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1월 5일자) ‘부지런함의 보상’이라는 기사에서 반 총장의 활약상을 소개하면서 그를 ‘컴백 키드(comeback kid·돌아온 기대주)’라고 묘사했다. 취임 초기 조용한 행보를 보였던 반 총장이 수단 다르푸르 사태, 지구온난화 대책, 유엔 개혁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음을 평가한 표현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반 총장의 최대 업적으로 수단 다르푸르에 유엔-아프리카연합(AU)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것을 꼽았다. 2003년 내전이 발생한 다르푸르에선 2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지금까지 20만 명이 학살당했다. 반 총장은 지난해 9월 수단·차드·리비아를 순방하면서 분쟁 당사자들에게 조속한 폭력사태 종식을 촉구했다. 다르푸르 평화유지군은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2만6000명에 이른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회의’도 언급했다. 187개국이 참여한 이 회의에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발리 로드맵’에 합의했다. 이 잡지는 “반 총장이 자신의 연결망을 능숙하게 활용해 다르푸르에 유엔 깃발을 꽂는 데 반대하는 중국과 기후변화협약에 반대하는 미국·중국을 집요하게 설득해 돌파구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유엔 개혁 노력도 주목받고 있다. 취임 이후 9000명의 유엔 직원들이 지켜야 할 윤리헌장을 만들고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부패 혐의가 확인된 11명을 파면했다.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 시절 이라크에 대한 석유-식량 프로그램을 놓고 부패 스캔들이 터진 것을 의식해 조달 관련 분야를 개혁했다. 유엔 역사상 처음으로 부서 간에 중복되거나 시대에 뒤떨어지는 업무들은 효율 위주로 통폐합시켰다.
이 잡지는 반 총장의 취임사 중 “조용히 앉아 있지 않겠다”는 발언을 인용한 뒤 “그는 1년간 12만5000마일(약 20만㎞)을 돌아다녔다. 39개 국가·지역을 57번 방문했으며 300차례의 양자 회담을 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반 총장은 유엔 직원과 각국 대사들로부터 폭넓은 존경을 얻고 있다”며 “(반 총장은)카리스마가 부족한 것 같지만 날카로운 통찰력과 순수한 끈기로 이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신문의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분열과 스캔들로 얼룩졌던 유엔이 돌연 조용해진 것 같다. 대담한 계획도, 현란한 연설도, 원대한 비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반 총장이 취임 직후 코피 아난 전 총장과 가까운 고위 간부들을 몰아내고 유엔 바깥에서 경험이 적고 자질이 부족
한 사람들을 영입해 격앙된 논란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사담 후세인에 대한 사형집행에 찬성 입장을 밝힌 것, 동(東)예루살렘 방문 시 이스라엘에 치우치는 느낌을 줘 팔레스타인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유엔 개혁을 밀어붙인 것을 반 총장의 실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