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별난 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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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는 <별>에서 이렇게 썼다. “만약 당신이 별빛을 바라보며 밤을 보낸 적이 있다면, 우리가 잠드는 시각에 또 하나의 신비스런 세계가 고독과 정적 속에서 눈을 뜬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세계로의 진입이 가능하다는 것은 얼마나 유혹적인 일인지…. 이제 누구도 별을 이정표 삼아 걷는 시대가 아니지만 여전히 별은 마음의 영원한 길잡이다. 도심에서는 밀려나버렸지만, 한 번도 자신의 자리를 버려둔 적은 없는 그 반짝이는 별을 따라가 보자. 겨울은 눈의 계절이면서 또 별의 계절이기도 하다. 도심에서 1시간 반 거리만 물러나도 별을 보기에는 충분하다.

지난 1월 4일 명지산 산허리에 자리 잡은 사설 천문대 ‘자연과 별’에는 별 소풍을 나온 서울 마포의 어린이집 꼬마 손님들로 가득 찼다.
남이섬이나 아침고요수목원 등의 명소들을 인근에 두고 있는 경기도 가평의 명지산은 그야말로 땅은 땅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풍요로운 곳이다. 해발 높이 1,267m의 명지산은 경기도 유일의 청정지구답게 울울창창한 자연 생태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덕분에 산삼과 당귀 등의 약초나 멧돼지, 노루, 오소리 등의 희귀동물 서식지로 손꼽힌다. 그리고 밤이 되면 쏟아지는 별 세례를 받기에도 더 없이 그만인 곳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오후 2시에 이미 천문대에 도착했지만, 별을 보기에 가장 알맞은 시간은 오후 7시 30분 이후. 밤하늘의 별을 체험하기 전에 아이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천문대장 김성종 씨는 천문대 주변으로 난 오솔길로 아이들을 안내했다. “아이들이 하늘과 땅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자”는 것이 김성종 씨의 평소 지론이다.

이곳 천문대를 방문한 관람객들의 필수 코스인 이 오솔길은 1.5km로 그다지 길지 않지만 길목마다 사과나무 밭, 계곡, 잣나무 숲 등으로 연결돼 있어 아이들을 자연 생태체험장으로 안내하는 가교의 몫을 톡톡히 한다. 아이들은 김성종 씨가 들려주는 나무와 숲 이야기, 새싹을 틔울 씨앗 이야기 등에 귀를 기울였고, 잣 껍데기를 주우러 이곳저곳을 누볐다.
깊은 산중에 해가 지고 사위에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명지산 하늘에 본격적인 별 축제가 펼쳐졌다. 금세 “별은 언제 보여줄 거예요?”라며 아우성 해대는 아이들을 향해 ‘쉿’하고 입을 모은 김성종 대장이 밤하늘을 향해 레이저포인터를 댔다. 본격적인 별 공부를 해야 할 시간이다. 작은 점들을 이어 그림을 그려 보이며 별들의 이름과 특징을 설명하는 동안, 아이들뿐만 아니라 함께한 어른들 역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별자리 얘기에 눈을 반짝였다.
국자 모양처럼 생긴 별자리를 가리키며 이름을 말해보라고 하자 아이들은 자신 있게 “북두칠성”이라고 입을 모아 외쳤다. 하지만 그것들이 큰곰자리이거나 작은곰자리이거나 밝혀지자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별자리들을 숙지한 후에 드디어 망원경에 직접 눈을 대고 별을 관찰할 때가 아이들에게는 가장 신나는 시간이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오리온․황소․쌍둥이․큰개․마차부 등의 별자리들이 또렷하게 보인다. 수만 배로 확대된 망원경 속의 세상은 또 다른 별천지다. 1월에는 사분의자리 유성우가 있는데 이는 8월의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 12월의 쌍둥이자리 유성우와 함께 3대 유성우로 꼽힌다. 사분의자리 유성우는 매년 주요 천문 현상 중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데 시간당 최소 60개에서 최대 200개 이상의 별똥별이 쏟아진다.

김성종 대장이 별자리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시작하니 한창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난 듯 했다. 이날 가장 많은 인기를 독차지한 별자리는 아무래도 1월의 별자리인 염소자리(Capricorn)였다.
미리 로마신화를 탐독해온 꼬마들 신이 났다. 밤이 깊어갈수록 별은 더 빛나고 염소자리에서 시작된 신들의 이야기가 좀처럼 끊이지 않고 장작불에 올려뒀던 고구마는 고소하게 익고 있다. 산책과 별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풀어보는 옛날 옛적 신들의 이야기. 그 신들의 이야기에 사람의 바람도 하나 보태어진다.
추운 겨울에도 이토록 빛나는 풍경을 안겨주는 자연에게 인간 또한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기를!

객원기자 설은영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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