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불안은 기억속의 파일 있는대로 바라보면 절로 흘러가고 사라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인간에겐 기억이 있다. 그리고 기억마다 풍경도 다르다. 어떤 기억은 즐겁고, 어떤 기억은 슬프고, 또 어떤 기억은 아프다. 그래서 인간은 허덕인다. 상처와 슬픔, 고통의 기억은 끊임없이 ‘지금의 나’를 긁어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곳에 서있는 ‘현재의 나’를 줄기차게 짜증나고, 슬프고, 분노하게 만드는 ‘현재의 문제’다.

 이에 대한 서양의 해법은 ‘심리 치료’다. 심리학에 바탕을 둔 서양식 심리 치료는 우울이나 불안을 고치고, 제거하고, 수술하려고 한다. 그러나 명상상담연구원 원장인 인경(51·사진) 스님은 그걸 “서양의 이원론적 사고 방식의 한계”라고 지적한다. 우울이나 불안에서 도망치고, 회피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병의 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 대안은 뭘까. 인경 스님은 ‘동양식 명상치료’를 제시한다. 그리고 “우울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그는 “우울과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바라봄’이 필요하다”고 한다. 4일 서울 중구 신당동의 명상상담연구원에서 인경 스님을 만나 바라봄과 벗어남, 그리고 명상과 치유에 대해 물었다.

 -기억이란 뭔가.

 “살면서 내가 경험한 내용이다. 이게 나 속에 영상 이미지로 저장돼 있다.”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인가.

 “아니다. 거기에는 감정과 생각, 갈망이 묻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의 사건 뿐 아니라 당시의 감정까지 기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의 본질은 ‘지나간 것’이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컴퓨터로 따지면 인간의 마음은 C드라이브다. 거기에 파일처럼 저장된 것이 기억이다. 그러나 파일의 실체가 뭔가. 바로 ‘전기 에너지’다. 나를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는 기억의 파일들. 그 실체가 ‘전기 에너지’임을 깨쳐야 한다.”

 -이해는 쉽다. 그러나 마음으로 깨치긴 어렵다.

 “물론이다.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명상치료법인 ‘영상유식관법’을 내놓았다. ‘다만 마음이 만들 뿐’이라는 불교의 ‘유식(唯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불교의 ‘유식’은 어려운 학문으로 통한다.

 “아니다. 유식도 초창기에는 수행법이 강조됐다. 그러나 학파간 논쟁이 불붙으면서 서로 ‘방패’가 필요했다. 그래서 논리학적 경향이 강해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초창기의 ‘숨결’은 사라졌다. 결국 논리적 치밀성을 얻은 대신, 유식의 생명력인 실천성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그럼 삶이 고통스런 이들에게 ‘영상 유식관법’은 어찌 적용되나.

 “남편이 무슨 말만 해도 화를 내는 내담자가 있었다. 그분은 사소한 간섭도 참질 못했다. 그런데 차분히 들여다보니 원인은 내담자의 ‘아버지’였다. 딸을 키우면서 아버지가 너무 많이 간섭한 것이다. 그래서 내담자는 ‘아버지는 나를 존중하지 않아’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남편의 작은 간섭이나 권위적인 모습도 견디질 못했다.”

 -그런 다음에는.

 “내담자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기억의 장면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바라보게 한다. 내담자는 고통이 클수록 이걸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문제를 회피해선 안된다.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풀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힘들었던 장면 속의 나를 지켜본다. 어린 나가, 기억 속의 나가 뭘 느끼고, 뭘 생각하고, 뭘 바라는지 짚어보게 한다.”

 -그럼 뭐라고 말하나.

 “‘아버지에게 야단 맞은 나는 담벼락 밑에서 울고 있어요. 겁많고 연약한 나는 내평개쳐져 있어요’라며 흐느낀다. 기억 속의 고통을 지금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무서워. 너무 자유를 억압해. 아버지가 나를 존중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그게 당시에 가졌던 나의 감정, 나의 생각, 나의 갈망이다. 그게 ‘통찰’이다. 통찰은 ‘거리두기’와 ‘바라봄’을 통해 생긴다. 그렇게 당시 아버지의 감정, 생각, 갈망도 바라볼 수 있다.”

 -통찰이 생기면.

 “기억을 떠올릴 때 예전의 나는 공포와 두려움에 젖어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통찰’이 생기면 달라진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일처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 다음에는.

 “기억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개입한다. 가령 간섭하는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저는 존중받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무서워서 벌벌 떨고만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바라는 것을 말하게 한다. 혹은 내가 나 자신을 향해 얘길 할 수도 있다. 그럼 거기서 화해와 용서가 일어난다. 나는 그걸 ‘고통의 소멸’이라고 부른다. 억지로 화해하고, 억지로 용서하면 고통이 소멸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뭘 지향하나.

 “슬픔이나 불안도 삶의 일부라는 얘기다. 그걸 나 자신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면 절로 흘러가고, 절로 사라짐을 보게 된다. 그걸 통해 기억이 담긴 파일의 실체가 ‘전기 에너지’임을 보라는 얘기다.”

 -간화선이나 위파사나와 비교하면.

 “간화선은 ‘성품(性品·불성)’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위파사나는 몸과 그 몸의 느낌에 더 초점을 맞췄다. 반면 영상 유식관법은 마음의 관찰에 더 초점을 뒀다. 몸과 마음, 성품 등 영역이 다르기에 서로 방해되진 않는다.”

 -어떤 방식이 더 효율적인가.

 “어떤 게 더 우월하다는 식의 이데올로기적 논쟁은 실효성이 없다. 이 셋을 적절하게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이게 옳다. 저게 틀리다’는 식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면 실천성을 망각하게 된다. 결국 불교의 본질인 생명력을 시들시들하게 만들고 만다.”

 인경 스님의 스승은 구산(1909~83) 스님이다. ‘해인사 성철-송광사 구산’으로 불리었던 선지식이다. 출가 전, 송광사에 드나들던 인경 스님은 구산 스님에게 출가의 뜻을 밝혔다. 그러자 구산 스님이 물었다. “너는 왜 출가를 하려고 하느냐. 누구를 위한 출가냐.” 인경 스님은 지금도 이 물음을 되뇐다. ‘누구를 위한 출가냐, 누구를 위한 출가냐, 누구를 위한 출가냐.’

 최초의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에도 이에 대한 내용이 있다. ‘왜 출가했는가’라는 부처님의 물음에 ‘세속은 좁고, 먼지가 난다. 들판은 광활하고, 탁 트여있다. 그래서 나는 출가했다’고 답하는 대목이다. 인경 스님은 “산속에 살아도 마음이 좁고 먼지가 난다면 그건 출가가 아니다. 반면 세속에 살아도 그 마음이 넓고 탁 트여있다면, 그게 바로 출가다. 먼지나고 좁은 곳이 어딘가. 바로 우리의 기억이고, 그 영상 속에 갇힌 우리의 삶이다. 그래서 그 영상을 초월해야 한다. 이 말은 인도의 무착 법사(4세기께 간다라에서 대승경전 『유가사지론』을 편찬한 고승)와 신라의 원측(613~696) 법사가 1500여년 전에 이미 얘기한 것이다”고 말했다. 명상상담연구원 02-2236-5306.
 

글=백성호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