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너무 노심초사하다 마(魔)에 홀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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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준결승전 제2국
[제5보 (87~106)]
白.謝 赫 5단 黑.朴永訓 5단

걱정하기로 말하면 끝도 없는게 인생사다. 바둑도 그렇다. 특히 유리하다고 느낄 경우 걱정은 더 많아진다. 별 시시콜콜한 것도 겁나는 폭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부자가 되어서도 빈주머니 시절처럼 용감할 수 없듯이 바둑이 유리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나 이판의 경우 셰허5단은 너무 노심초사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는 자신을 쥐어짜듯 괴롭히며 스스로 너무 오그라들었다. 이리하여 포석에서의 광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경과를 보자. 백△의 강력한 도전을 흑은 강하게 응징할 수는 없고 87, 89 정도로 참아야 한다. 이제 백은 '참고도' 백1, 3으로 둘 차례다. 그러나 셰허는 A의 단수가 사라지는게 아깝다. 그렇다고 1을 생략하고 그냥 3으로 막자니 흑1로 잇는 수가 싫다.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좌상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94의 곳이 커보인다.

사실 94를 두면 이곳 흑 전체가 미생이 된다. 반대로 흑이 94를 두면 B의 치중수가 발생한다. 그래서 94가 커보인 것이지만 사실은 94는 시시한 곳이다. C의 곳보다도 작다. 흑의 입장에서도 101이 좋은 곳이라 94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그러나 셰허의 손은 끝내 94의 곳에 멎었고 순간 95의 요소를 거꾸로 밀려버렸다. 98, 100도 이상하다. 101이 진짜 요소여서 이곳을 당하니 지금껏 헛 힘만 뺀 격이다. 생각을 너무 하다가 마(魔)가 낀 것일까. 공격은 하고 있지만 D의 차단도 남아 어수선하다. 형세는 슬그머니 역전되고 말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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