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X세대>6.태국-삐삐.휴대폰은 당연한 상비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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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태국의 X세대(70년이후 출생자.25세 미만)는 정치의식도없는 공허한 세대다』『아니다.그들은 기성세대보다 조금 더 자기중심적일지 몰라도 젊은이다운 반항심을 갖고 있고 또 그 때문에방황하고 있는 세대다.기성세대에게는 젊은이들이 항상 이상하게 보이게 마련이다.』 전례없던 경제적 풍요속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의 집단을 놓고 태국사회가 조용한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70년대의 태국에서 소위 운동권 출신이었으나 이제는 중년의 언론인인 캄눈 시디사만(일간신문「매니저」편집인)은 6회에 걸친시리즈연재를 통해 X세대에 대한 부정적 진단을 내림으로써 토론의 불씨를 제공한 장본인이다.
그는 우선 X세대를「이피족」(Yiffies,젊고 개인주의적이며 자유지향적인 소수의 튀는 애들,Young, Individualist, Freedom-minded, Few and Sexy)으로 정의한다.
캄눈은 또 X세대가 열광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가사내용『유혹적인 옷을 입은 여인이여,내가 너를 강간할지 몰라』등이 폭력과 저속성으로 뒤덮여 있다면서 이점이 바로 현 X세대의 기존가치에 대한 반항방식이 무언가 잘못되어 있음을 시사 한다고 주장한다. 캄눈의 비판적 시각에 대한 반향 또한 적지 않다.92년 군의 쿠데타기도로 촉발된 유혈사태때 수많은 학생이 희생된 명문 타마사트대학의 와라폴(사회학)교수는『성적의 경쟁만을 부추기는 현행 교육제도는 젊은이들에게 이기심만을 키워주게 마 련』이라며 화살을 제도로 돌린다.
또 아직은 나이상 X세대인 전직 운동권학생들도 『학생들의 정치의식에도 사이클이 있다.정치적으로 무심한 일정시기 이후에는 정치의식이 왕성한 시기가 오게마련』이라고 두둔한다.결국 사회전체의 분위기는 비난보다는 포용쪽이다.
한국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튀게」 행동하는 부자아이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의 오렌지족 비판같은 매도의 분위기는 없다.그들을 약간은 꾸짖지만 『부자 부모만나 돈이 많다보니 철없는 어린나이에 그럴 수도 있지』하는 식의 아량과 이해가 더 많다. 사실 태국은 중산층이 적고 빈부차이가 심해 부자의 태국과 가난한 이의 태국으로 두개의 나라가 공존하는 상태.일례로 태국의 초일류 스포츠클럽인「로열 방콕클럽」이 슬럼가 옆에 있어폴로경기.승마등을 즐기러 오는 회원들이 탄 롤스로이스 .벤츠등고급차의 행렬이 양철지붕의 판자촌골목을 누비고 있었다.외부인의호기심을 끄는 점은 그 공존의 상태가 극히 평화롭다는 것이다.
주어진 운명을 따르는 불교적 체념인지 군과 경찰이 주도하는 정치적 억압의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청소년들의 놀이거리라 불리는「시암 스퀘어」.
옷과 액세서리가게.술집.카페.음식점.백화점이 몰려 있다.
뿐만 아니라 P.E.P같은 입시준비종합학원과 과학특강센터까지자리를 잡고 있어 오후 3시이후부터는 제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의흰 물결로 거리가 춤을 춘다.
『학원에 왔다가 국수도 사먹고 쇼핑도 하러 왔다』는 18세의스와티는 멋있게 보이려고 자신의 6천만원짜리 BMW의 차체를 정비공장에 가서 조금 내렸다.타이어와 차체사이의 공간을 없애는이 작업에는 10여만원이 드는데 이 거리의 고 급차 대부분이 이 작업을 거친 모습들이다.
『차에도 무리가 가고 바보같은 짓』이라고 겉으로는 비웃는 17세의 푸시트도 아스팔트에 납작 엎드려 달려가는 고급차를 가진다른 아이들이 내심 부럽기만 한 모양이다.
BMW는 없지만 중상류집안의 푸시트 역시 늘 갖고 다니는 것은 일제 삐삐와 휴대폰.『공중전화가 잘 설치돼 있지 않은 탓』이라고 하지만 부유층 청소년에게는 당연한 상비품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쇼핑하기와 쇼핑몰 구경하기는 방콕에서는 어른.아이를 불문하고가장 인기인 여가사용방법.방콕이 면적상으로는 서울의 2배이긴 하지만 60여개의 대형백화점이 밤 10시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방콕의 쇼핑열기를 말해준다.그 중에서 도「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고급백화점으로 X세대 청소년의 거실.공부방을 겸하는 놀이공간이다.
방과후 단체로 택시를 타고 온 청소년들이 햄버거로 배를 채우고 커피집에 앉아 숙제도 하고 담배도 피운다.
친구집보다 이곳이 편하고 좋아 거의 매일 방과후면 이곳을 찾는 고등학교 3학년의 두사디는『최소한 용돈으로 일주일에 3만~4만 원이 필요하다』며 나와다니면 아무래도 돈을 많이 쓰게 된다고 설명한다.
***“여자의 삶 기쁘다” 고백 부유층 자녀들의 용돈은 한달60만원까지에도 이르는데 이는 태국의 고위관리 월급에 맞먹는다고 한다.어둠이 내린「시암 스퀘어」.짙은 화장을 한 키가 유난히 큰 미녀들이 미니스커트에 노출이 심한 티셔츠차림으로 몰려다닌다.이들은 사실은 여장남자들.
여자보다 더 가녀린 목소리,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그윽한 표정등은 남자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게 한다.
동남아전체의 모계사회적 성격탓인지,국제도시의 성격탓인지 방콕에는 유난히 여장남자가 많이 눈에 띈다.「팝」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17세의 여장 소년은 피임약 상용으로 가슴이 불룩하다.1년여 부모를 설득한 결과 부모도 자신의 여성성 을 인정해준다며 여자로서의 삶이 기쁘기만 하다고 고백한다.
「마이 뺀 라이(걱정마라)」,「쟈이 얜얜(속태우지 말라)」고즐겨말하는 태국사람들의 융통성과 포용성 안에서는 어느 문제도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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