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진 데」는,수렁과 여성의 은밀한 곳을 이중으로 표현했다고들한다.그렇더라도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 음사(淫詞)라 제쳐놓기는어려울 것 같다.
강의실 안은 여성들의 궁금증으로 닝닝대는 벌소리 넘치 듯 했다. 「정읍사」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논란이 많았다.
우선 「중종실록」에 「음사」로 규정되어 있는 대목이 문제다.
음란하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노래가 관변기록에 의하면 음사로 못박혀 있고,개사(改詞)까지 당하고 있으니 이게 예사 문제인가. 「정읍사」는 정말 음사인가 아닌가? 음란하다면 어느 대목이 어째서 음란한가? 이것은 우리 고전에 관심을 두는 많은사람들이 국문학계에 던져온 해묵은 숙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음사이건 아니건 「정읍사」의 가치엔 변함이 없다.오히려 음사라면 우리 고대인의 목소리를 더욱 생생히 전해주는 진솔한 문학일 수 있다.고대문학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숨김없는 그 박력에 있지 않은가.
다음은 정말 백제때의 노래인가 하는 의문을 둘러싼 논란이다.
「정읍사(井邑詞)」라는 노래 제목이 문제의 초점이다.
요즘의 정읍시(井邑市.지난 1월1일부터 정주시와 정읍군을 통합)의 옛이름은 정읍현이다.백제때 정촌현(井村縣)이었던 것을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16년(757년)에 이렇게 바꾼 것이다. 따라서 「정읍사」라는 제목의 노래는 백제때가 아닌 통일신라 경덕왕 이후에 지어졌으리라는 주장과 노래는 그 전부터 있었는데 제목만 나중에 붙여진 것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것 역시 국문학상의 한 수수께끼다.
『어때요? 오늘 별 일이 없으면 우리 회사에 들러 차라도 들고 가시지 않겠어요?』 강의가 파하자 서여사는 생기 띤 얼굴로길례와 아리영을 청했다.방금 떠오른 기발한 아이디어가 서여사를쾌활하게 하고 있었다.
『어떡하죠? 오늘은 아버지하고 데이트 약속이 있어서….』 아리영이 미안해 했다.
『아버님과의 데이트? 그거 참 부럽네요.그럼 정여사는?』 길례는 서여사를 순순히 따라 나섰다.고대미술관 뜰은 흰 자작나무숲으로 유명하다.하얀 옷을 몸에 두른 정갈하고 훤칠한 이 나무에 길례는 늘 끌린다.
해질녘의 말간 햇살이 내리 비치는 그 하얀 숲속에서 노신사가걸어나오고 있었다.다크 슈트에 까만 소프트 모자차림.아리영의 아버지였다.
『아리영이 신세지고 있습니다.』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하는반백의 머리가 흰 자작나무 아래서 훈은(燻銀)처럼 아름다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