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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원한 이라크 정치 안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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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략 5년 전, 미군은 이라크로 들어와 사담 후세인을 권력에서 쫓아내고 이라크 통제권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군사적 승리 직후 진짜 혼란스러운 상황이 시작됐다. 종전 후 계획이 부실해 미군은 이라크를 평화롭게 만들 수가 없었다. 시아파가 지배할 것을 우려한 수니파들이 긴장을 조성했고 폭력사태를 일으켰다. 성전을 수행하는 전사들이 미군과 이라크 정부와 싸우기 위해 이라크로 들어왔다. 이라크 대부분의 지역이 돈과 영향력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 휘말렸다.

2007년 초 2만8000명의 미군을 추가로 이라크 중부지역에 배치한 부시 행정부의 병력 증강 조치는 이라크 내 폭력사태를 어느 정도 줄이는 데 기여했다. 펜타곤은 2006년 3월 이래 이라크 전역에서 사망한 미군 숫자가 지난해 11월에 가장 적었다고 발표했다. 이라크 정부에 따르면 살해당한 이라크 민간인의 숫자도 지난해 5월 2000여 명에서 11월에는 530명으로 줄었다.

점점 더 많은 수니파 지도자가 알카에다 성향의 외국 전사들과 싸우는 미군에 협조하면서 이라크가 더 많은 석유를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커졌다. 몇몇 수니파 전사들은 북부도시 키르쿠크에서 터키 항구 제이한까지 석유를 이송하는 파이프라인을 지켜줄 것을 부탁받기도 했다. 그 결과 석유 파이프라인이 공격받는 일이 과거보다 훨씬 줄었다.

최근 이라크에서의 군사적 성공은 부시 정부에 새로운 숨쉴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선거를 앞두고 많은 미군을 빨리 철수해야 한다는 공격으로부터 백악관을 구해 주었다. 하지만 미군이 이라크의 고질적인 정치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누리 알말리키가 이끄는 이라크 정부는 부패와 무능, 국론 분열로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상태다. 그는 수니파 국민들을 통합하는 데 실패했다. 시아파와 수니파가 이라크 석유 판매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과, 정부 조직 내 수천 명의 후세인 인맥을 축출하는 데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종파 간 화해가 어려워지고 있다.

북부지역의 파이프라인 주변 상황이 일시적으로는 개선됐다 하더라도, 향후 상황은 전적으로 미군과 함께 싸우는 군벌지도자들과 수니파의 의지에 달려 있다. 바로 여기에 쿠르드 문제까지 끼어든다. 2005년 당시 이라크 새 헌법이 통과되는 데 필요한 쿠르드족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석유가 많이 매장돼 있는 키르쿠크 주민들에게 2007년 말까지 이라크의 통치를 계속 받을 것인지 아니면 쿠르드 지방정부로 편입될 것인지를 놓고 투표할 수 있도록 약속했다. 투표를 실시한다면 키르쿠크 통치권이 쿠르드 지방정부로 넘어가는 것이 확실시된다. 대부분의 키르쿠크 주민이 쿠르드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키르쿠크의 석유 수입을 쿠르드족이 독차지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아·수니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군 증강의 가장 큰 한계는 그것이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군은 결국에는 이라크를 떠날 것이다. 시아파·수니파·쿠르드족은 모두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최근 미군이 얻은 성과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라크 사람들이 정치적 안정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바로 그 때문에 지금 이라크가 미군이 증파되기 전보다 평화 정착에 한걸음 더 나아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언 브레머 국제정치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그룹 대표
정리=박경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