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은 한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가 4강의 위업을 달성했죠. 2005년 문화월드컵에선 결승까지 올라갈 생각입니다. 우승은 아직 무리겠고….(하하하)"

지난 5일 재단법인 설립을 마친 이강숙(68)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장은 월드컵 축구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세계 최대 도서박람회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한국 문화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도서전이 월드컵처럼 순위를 매기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각오로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마지막 인생을 거는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

호인형인 그의 얼굴에 굳은 의지가 스쳤다. 서울대 음대 교수.KBS 교향악단 총감독.예술종합학교 총장 등을 지낸 그의 일관된 음악 인생에 방점을 찍는 기분이라고 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해마다 주빈국을 선정한다. 전세계 출판 현황을 드러내는 동시에 한 국가의 문화를 집중 조명한다. 한국은 내년(10월 19~24일) 행사의 주빈국이다. 지구촌 출판.문화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다.

"도서전은 문자 그대로 문화월드컵입니다. 지난번 월드컵 때 6천6백여명의 기자가 취재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에는 1만2천여명의 취재진이 찾아옵니다. 관람객도 30만명에 이르죠. 이런 자리에 주빈국으로 초청됐으니 우리를 알리기에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사실 그는 처음에 위원장 자리를 고사했다. 10년 간의 예술종합학교 총장직을 마치고 지난 2년 동안 '자유인'으로 돌아가 대학 시절부터 꿈꿔왔던 소설 창작에 재미를 붙였다. 다시는 사람들 틈에서 부대끼는 자리를 맡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나 주변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시간이 많은 것 같지 않은데….

"그렇습니다. 가장 걱정되는 건 번역 분야입니다. 한국을 상징하는 1백권을 선정하고, 한국 문학 대표작도 뽑아야 합니다. 영어.일본어.중국어 등 7개 국어로 번역도 해야죠. 다행히 문학 작품은 이미 번역된 게 많으나 외국에 내놓기에 손색이 없도록 충분히 검토해야 합니다."

-주빈국의 의미를 설명한다면.

"사실 외국에선 한국을 잘 모릅니다. 유럽인이 가고 싶어 하는 나라에서도 한국은 눈에 띄지 않죠. 월드컵으로 국가 인지도는 높아졌으나 문화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습니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 한국 하면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무엇을 보여줄 건가요.

"도서전의 중심은 출판이지만 그렇다고 책만 소개되는 자리는 아닙니다. 다양한 공연.학술.전시 행사가 열리죠. 주빈국은 특히 그렇습니다. 도서전(본부장 최태경 출판협회부회장).번역출판(진형준 번역문학원장).예술공연(이윤택 국립극단 예술감독).학술전시(김홍남 민속박물관장) 네 분야로 나눠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고루 소개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예컨대 도서전에서 직지심체요절.훈민정음.조선왕조실록 등 우리 전통의 뛰어난 인쇄문화와 세계 최고 수준의 멀티미디어 전자책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고금(古今)을 아우르는 것이죠. 번역출판에선 중견.신인 문인을 고루 조명합니다. 우리 작가가 노벨상을 타는 시기를 앞당길 겁니다."

-예산이 상당하겠네요.

"3백억원가량으로 잡고 있습니다. 정부는 물론 민간의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그만큼 얻을 게 있나요.

"문화가 없이는 장사를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출판.문화는 물론 한국 전체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는 자리가 될 겁니다.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것이죠. 기업들도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문화는 곧바로 경제로 연결되거든요."

-외국에서 관심은 보입니까.

"저도 놀랄 정도입니다. 최근 베를린 관계자 10여명이 찾아왔는데 독일에서 내년은 '한국의 해'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외에도 베를린에서 한국 관련 대규모 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공연만 8백여회 계획하고 있답니다. "

李위원장은 평소 그가 자주 인용하는 '살인적 인내'란 문구를 들었다. 일도 많고, 벽도 많겠지만 하나하나 성심껏 풀어가겠다고 했다. 그런 뜻에서 일과를 하나 빠짐없이 메모.녹음하고 있다. 그런 성실성이 내년 10월 '오! 문화 코리아'를 떨칠 자양분이 될 수 있을지…. 일단 스타트 총성은 힘차게 울렸다.

박정호 기자<jhlogos@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