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칼럼

‘먹튀’ 는 죄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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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기업에게 무얼 해서 먹느냐와 언제 튀느냐는 것만큼 중요한 결정은 없다. 친구들 사이에선 욕을 먹을지언정 기업에게 먹튀는 핵심 전략이다. 판단은 오로지 그 기업 몫이다. 이익을 극대화하는 시점에 손을 털고, 또 다른 돈 되는 곳을 찾아나서는 게 기업의 생리다. 
 이명박 당선자가 대선에서 승리한 뒤 열린 첫 공식 회견에서 외국인 투자유치 특별위원회를 두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위원회를 100개쯤 둬도 먹튀가 인정되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발을 빼고 싶을 때 빼지 못한다면 누가 돈을 들고 그 나라를 찾겠는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먹튀를 막는 일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상대가 돈을 많이 번 외국기업이라 “어디 한번 당해봐라”는 감정도 없지 않다. 바로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 얘기다. 론스타는 현재 외환은행의 주인이다. 상식 같은 말이지만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은 사유재산권의 인정이다. 자기 재산을 정리하고 싶을 때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론스타는 지금 제 것인 외환은행을 팔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산 것은 2003년 8월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이 부실덩어리 은행을 팔지 못해 안달했다. 국내 대기업들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었다. 금산분리니 뭐니 해서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외국기업들에 제발 사달라고 애원하고 다녔다.

 지난해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팔기로 결정했다. 몇몇 인수자가 나타났고 그중 국민은행이 사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계산해 보니 론스타는 2년 반 만에 투자원금의 거의 세 배인 4조2000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 사회 분위기가 배 아파하는 쪽으로 확 바뀌었다. 미국 자본이 이 땅에서 이런 거액을 챙겨 나가려 한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끓어올랐다. 이어 감사원과 검찰이 론스타 흠집 찾기에 나섰다.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넘기는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론스타에 빨리 팔기 위해 외환은행의 신용등급을 낮춰줬다는 주장이었다. 이어 소송이 제기됐고 재판이 올 초 시작됐다. 

이 바람에 국민은행과의 계약은 깨져 버렸다. 론스타는 새로운 인수자를 찾아 나섰다. 마침 한국에서 영업망 확대를 꾀하고 있던 영국계 HSBC은행과 9월에 새 계약을 했다. 두 당사자는 계약이행 시한을 내년 4월까지로 잡았다. 그러나 지금 재판 진행 상황으로 볼 때 이 계약도 깨질 가능성이 있다. 소송이 론스타의 재산권 행사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판이 끝나기 전에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절대 승인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1월 재판이 개시된 뒤 1년이 훌쩍 지나갔다. 검찰이 내세운 증인 40여 명 가운데 11명 신문에 걸린 시간이다. 재판장은 이런 속도라면 재판이 끝나는 데 앞으로 2년은 더 걸릴 것 같다고 최근 언급했다. 재판이 마냥 늘어지면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은 부지하세월이 되고 있다. 내 걸 내 맘대로 팔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들 입에서는 앞으로 한국에 투자하려면 ‘소송 리스크’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외국인 투자 활성화의 기치를 높이 든 이명박 정부가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다.

심상복 경제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