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조종사 송환타결 배경-北,한국 따돌리고 외교력과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北韓)에 억류중이던 미군(美軍)헬機 조종사 보비 홀 준위의 송환은 미국과 북한이 사태를 더이상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양보의 결과다.
강경한 입장을 보이던 북한의 태도변화는 「얻을 것은 충분히 얻었다」는 북한의 판단,연말까지는 송환시켜야 하는 부담이 있는美정부의 북한 달래기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특히 북한으로선 새로운 대미(對美)관계를 조성해가고 있는 중에 전혀 기대하지 않던 선물이 날아들어 적잖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북한은 무엇보다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온 군사정전위의北-美간 평화협정체제 전환 정책을 한발 진전시키는 소득을 거뒀다. 미국이 요구하는 군사정전위 회의를 철저히 외면함으로써 군사회담에서도 北-美간 직접 대화를 유도해 냈다.
비록 北-美 평화협정체제로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군사정전위 무력화와 한국배제라는 전략에 성공했다.
한미(韓美)양국은 미군헬기의 북한영공 침범이 실수에 의한 우발적 사건으로 규정하고 외교적 사안이라기 보다 군사문제로 접근했다. 따라서 사건 발생 초기 양국은 사건을 판문점 군사정전위를 통해 해결하려 노력했으나 완강한 북한의 거부로 성과를 얻지못했다. 유해송환도 양측의 군사접촉으로 이뤄졌으나 그것은 미국측에선 정전위 회담 대표,북한쪽에선 고위군사접촉이라는 모호한 형태로 이뤄졌었다.
북한은 이어 생존조종사 송환도 정전위가 아닌 미국 고위관리의평양방문을 통해 해결했다.
이로써 북한은 미국과 외교관계의 실질적 바탕마련을 대내외에 인식시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또 핵협상 파트너였던 강석주(姜錫柱)북한외교부 제1부부장과 로버트 갈루치 美국무부 핵대사간 채널을 활용해 北-美관계가 실질적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북한은 또 이번 협상에서 미국으로부터 이번 사건에 대한 「사과」에 가까운 유감표시와 같은 종류의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받아냄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를 재정비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를 갖게 됐다.
북한은 이번 사건 해결과정을 통해 평화체제 재정비의 필요성을십분 강조할 수 있게 됨으로써 한미 양국의 소극적 입장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을 펼 수 있게 됐다.
이번 사건 해결과정에서 한미 양국은 북한의 이같은 의도를 봉쇄하기 위해나름의 조치를 취했다.
판문점 접촉의 미군대표를 소장으로 하자는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그를 군사정전위 대표로 임명하는 조치와 허바드 부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하기전 한국을 방문,북한과의 협상에서 조종사 송환 이외의 다른 문제는 논의하지 않기로 다짐한 것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종사 송환이라는 목표를 위해 미국은 북한의 요구를 대폭 수용할 수밖에 없었으며,결과적으로 북한의 입장이 여러모로 강화된 것이 사실이다.
〈康英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