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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와 되갚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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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속임수와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올 한 해는 유난히 그랬나 보다. 오죽했으면 매년 그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해온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자기기인(自欺欺人)을 선정했을까. 자기기인은 자기를 속이고 남도 속인다는 뜻. 거짓말과 속임수가 올 한 해 우리 사회를 특징 짓는 말이라니 딱하고 한심하다. 하기는 신정아와 문화예술계의 유명인사들의 학력 위조가 줄줄이 드러나고, 대학 총장과 교수들이 논문 표절로 곤욕을 치렀으며, 대선판에선 음해와 거짓 해명이 난비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거짓말과 속임수는 한두 번은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론 결코 좋은 전략이 아니다. 뜨내기 손님만 상대할 요량이 아니라면 속임수로 장사를 계속할 수 있는 상인은 없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손님을 속이거나 바가지를 씌우다간 조만간 손님이 끊기고 가게 문을 닫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

게임 이론에선 이를 반복 게임의 효과라고 한다. 단판 승부에선 속임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이기려고 하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게임에선 그럴 수 없다. 오늘 상대방을 속여서 얻을 수 있는 이득과, 그 비열한 배신 행위가 장래에 불러올 상대방의 보복과 그에 따른 손실을 견주어 봐야 하기 때문이다. 미래 지향적인 게임 참가자는 당장 눈앞의 이득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상대방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본다. 기업들의 친절한 애프터서비스나 정치인의 성실한 언행은 본성이 착해서가 아니라 그러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는 반복 게임에서 어떤 전략이 가장 우월한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전 세계 유명 학자들에게 최고의 전략을 담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제출된 각각의 프로그램을 컴퓨터상에서 대결시켜 최후의 승자를 가려냈다. 가장 승률이 높았던 프로그램은 캐나다 팀이 만든 이른바 ‘되갚기(tit-for-tat)’ 전략이었다. 상대방이 협조적이면 나도 협조하고, 상대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나도 비협조로 보복한다는 단순한 전략이 결국은 이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개의 인간관계는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거짓말과 속임수가 영원히 통하지 않는 이유다.

국민들은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정권교체로 되갚았다. 한 번은 당했지만 두 번은 속지 않는다는 전략을 이미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새 정부도 국민의 되갚기를 항상 명심하시길.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