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있는풍경>강원횡성 토종농장 송내준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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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한국의 토종을 만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지난 일요일 영하 12도의 추위속에 강원도횡성군갑천면 동아막 골짜기속 「토종농장」을 찾아든 40여명의 서울구경꾼들은 때마침 어미의 뱃속에서 튀어나와 젖은 몸으로 빽빽 풀피리같이 울어대는 아 기염소 세마리를 볼 수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앙증맞은 생명」을 접한 일행은 다투어 염소 울음을 흉내내며 추위를 녹여낼 듯 환하게 웃었다.
시민 여행단체인 두레모임이 주선한 「토종기행」에 참여한 일행들은 강원도 원주→횡성읍 로터리→갑천면농협 추동분점을 지나 민가가 없는 산길을 허연 입김을 뿜어대며 20여분간 기어올랐다.
얼음장 밑에서 또랑또랑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찾아든 토종농장은 은빛으로 빛나는 은사시나무의 군락이 돋보이는 산봉우리들이 어깨를 맞댄 양지바른 골짜기에 숨어있었다.그곳에는 농장 주인 宋내준(71)할아버지가 전국을 헤매며 얻어온 한국 의 토종들이「매에에헤…,꽥꽥…,음매…,꼬끼오…」하며 동물농장의 듣기좋은 노래를 겨울 산야에 토해 내고 있었다.
농장초입 산비탈에 집을 지은 토종벌들은 깊은 동면에 접어들었지만 수십년간 깊은 산골에서 토종 혈통을 유지해온 한우.오리.
염소.닭들은 저마다 먹이를 찾느라 분주한 겨울나기를 하고 있었다. 전국에서 사라져가는 토종들이 이곳으로 모여든 것은 다 宋할아버지 덕택이다.서울생활 20년을 포함,젊어서부터 대도시에서줄곧 장사를 해온 宋씨 부부는 65세가 되는 지난 88년 3천여평의 땅을 2백원씩에 사 이곳 화전민 마을에 지친 몸을 정착했다. 한때 큰돈을 벌기도 했던 그는 사기에 휘말려 전재산을 날린 후 「속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뿌린대로 거둘 수 있는것」을 찾아 아내와 함께 이 산골에 찾아들었다.
빈 벌통 10여개를 들고 이곳에 들어와 움막을 짓고 새 인생을 시작한 그는 어려서 봤던 토종들이 모두 사라져 가는 농촌에오니 우리 것을 보존하겠다는 욕구가 강렬하게 솟구치더라고 했다.그해 토종꿀로 1천만원을 번 후 본격적으로 전 국 농가와 시골장으로 토종채집에 나섰다.
6개월의 탐색여행끝에 시골장에 토종란을 들고 나온 할머니의 집을 수십리 따라 걸어가 토종닭 6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쉬지 않고 목청을 돋워대는 토종닭들이 이제는 1백여마리다.또산속에서 주운 오리알 12개를 부화시킨 것이 2백마리 가깝게 늘어났다.그는 이들을 모두 방목하고 있다.
벌통마다 3천마리의 토종벌이 꿀 한되씩을 생산하므로 2백여개의 벌통은 이제 한해 4천만원의 소득을 안겨준다.그는 이 돈을밑천으로 여전히 토종가축과 알곡을 찾아 전국을 누비고 있다.지난해에는 천장미조.우식메조.찰옥수수.이팥.묵밭뙈 기감자등 토종30여종을 모아왔다.
이런 곡식들은 어느 한 농가에서 자자손손 맥을 끊지않고 심어왔던 것으로 내년에는 씨앗용으로 키워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줄생각이다.
『자연은 빈손으로 온 사람들을 뿌리치지 않아요.정직하게 애정을 쏟아붓고 노력하면 빈손을 그득하게 채워줍니다.』 [橫城=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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