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이 부러우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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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스턴 성의학연구소의 듀삼 박사가 필자 부부를 그의 집에 초대한 적 있다. 당시 듀삼 박사와 필자는 함께 치료하던 환자의 심각한 외도 문제에 골머리를 앓던 때였다. 호수가 바라보이는 푸른 잔디 정원에 매료된 필자가 “울타리 너머 남의 잔디가 더 파래 보인다”는 영어 속담을 언급하며 그 환자를 떠올리자 듀삼 박사도 맞장구쳤다.

외도 당사자들은 자신의 배우자보다 외도 상대의 일부 장점을 유달리 크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에겐 자신의 것보다 남의 잔디밭이 더 파랗게 보이기 때문이다. 외도 상대자와의 사이에는 가사·육아 등 현실적인 골칫거리가 없는 데다 얼핏 보면 배우자보다 훨씬 더 자신을 잘 위안해 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위험천만의 스릴에 빠진다. 하지만 새 잔디밭도 결국 문제투성이란 점을 뒤늦게 깨닫고 땅을 치고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

외도 상대 좋아 보여도 현재 배우자만 못해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외도 문제는 심각한 수준인 듯하다. 최근 어느 연예인 부부의 외도가 사회적 이슈가 됐고, 불륜 문제를 다룬 드라마의 시청률은 여전히 높다. 그런데 TV 앞에서 대다수는 “저런 인간과 어떻게…” 하며 비난에만 정신이 없지 해당 부부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그런 문제는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엔 관심이 없다. ‘몇 주 후 다시 보자’며 문제 부부의 이혼에 찬성표를 던지느냐 마느냐 하는 식으로 끝맺어 버리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남녀의 외도는 색깔이 좀 다르다.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성의 외도는 상당히 즉흥적이고 성적인 욕구가 더 많이 관여하며 그 빈도도 높다. 여성의 외도는 빈도는 떨어지나 성적 만족보다 외도 대상과의 관계에서 정서적인 유대감과 친밀감을 찾으려는 시도가 많으며 기존의 부부관계에 더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스턴버그 박사는 이상적인 사랑의 3요소로 헌신·친밀감·열정을 꼽았다. 이 세 가지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삼각대가 되어야 관계가 쓰러지지 않는다. 친밀감 없이 열정에만 사로잡힌 만남은 초기의 열정이 식으면 쉽게 권태기를 맞게 된다. 그 시기에 정서적 유대감이라고 불리는 친밀감을 함께 저축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일방적인 헌신만 강요하는 부부 사이도 오래가지 못한다.

요즘은 부부 사이에 성적 만족이 떨어지면 외도도 할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어난 듯하다. 사랑의 3요소에서 적절한 열정이 모자라는 경우다. 겉으로 성격 차이라 말하는 부부 중에도 속내를 훑어보면 성(性)적 차이가 크게 차지할 때가 있다.

파트너 대신 방법 바꾸길

성적 불만족의 경우 상대의 성기능 자체의 문제보다 성의 다양성이 부족해서인 경우가 더 많다. 성의 다양성이란 파트너의 다양성이 아니다. 한 명의 친밀한 대상과 다양한 방식으로 성생활의 변주곡을 만드는 것이 성의 다양성이다. 매번 똑같은 놀이가 재미있을까. 매번 똑같은 음식이 어떻게 맛이 있을까.

성적인 불만 상태에서 다른 상대를 선택하는 것보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성감대·체위·장소·복장·시간대 등 다양한 요소에 변화를 줘 신선함을 즐기는 편이 낫다.

성적 권태기에 빠진 부부들에게 상대방의 성감대를 다시 찾고, 성 흥분에 집중하는 훈련을 시키다 보면 그들이 얼마나 상대방을 몰랐는지 자각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다 맞는 부부는 없다. 울타리 너머로 파랗게 보이는 남의 잔디도 다가가 보면 동물의 배설물과 잡초 천지일 수 있다. 초라해 보이는 내 잔디밭도 저 멀리서 바라보는 누군가의 눈엔 아름답고 완벽한 잔디밭으로 보인다. 건넛집 정원을 보며 한숨 짓지 말고 우리 집 정원의 모자란 부분을 부부가 함께 조금씩 다듬고 가꿔 가며 서로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 주자.

강동우·백혜경 성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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