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골프>87년 호주오픈 헤프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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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한 홀에서 여덟번의 퍼팅? 그것도 프로 골퍼가? 쉽게 믿기지않을 이같은 해프닝이,그것도 이름깨나 알려진 호주오픈에서 벌어져 한동안 골프계의 이야깃거리가 된 적이 있다.
화제의 현장은 호주의 명문코스인 로열 멜버른 코스의 3번홀.
길이 3백33야드,파 4로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이 홀은 그러나그린이 빠르고 업다운이 심한 「애물」로 소문나 있었다.70년대중반 세계 상위랭커인 리 트레비노가 이 홀에서 경기를 치른 뒤『다시는 여기 오지 않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을 정도다.
87년 11월에 열린 호주오픈에서 3번홀은 경기에 참가한 골퍼들을 집단적으로 애먹임으로써 악명을 떨쳤다.
당시 그레그 노먼은 3라운드 합계 2백2타로 우승을 굳혀 나갔다.2위와의 차이는 7타였다.
4일째 마지막 라운드 첫 두 홀에 한시간 이상이나 들이고 3번 홀에 도착한 그는 기가 찼다.이날따라 서있는 볼이 움직일 정도인 시속 35~50마일의 강풍이 몰아친 데다 핀마저 경사가심한 오르막 지점에 꽂아져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이었다.무려 20명이나 되는 프로들이 티샷을 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갤러리들은 무려 3시간이 넘게 3홀 그린 주위에 몰려 프로들의 「기술」보다는 퍼팅이 빚는 「코미디」를 보고 있었다.
4퍼팅으로 홀아웃을 하면 잘하는 것이었으며 대부분은 5~6번을쳐야 마칠 수 있었다.
이날의 가장 큰 「봉변」은 중견 프로인 러셀 스완슨의 몫이었다.냉탕.온탕.다시 냉탕…무려 여덟번의 퍼팅 끝에 겨우 홀아웃에 성공한 것이다.
캐디들도 볼 마킹에 애를 먹었다.볼이 멈췄다 싶어 가보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래리 넬슨의 캐디는 움직이는 볼을 잡아버리는 바람에 넬슨에게 「억울한 2벌타」를 덧붙여 주기도 했다.
행운과 불운이 순식간에 교차하는 갖가지 해프닝이 속출했다.이날의 행운아는 브레트 오글.퍼팅한 볼이 홀컵을 1피트나 지나가캐디가 마크를 하려는 순간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준 덕분에 볼이 거꾸로 내려오기 시작해 홀 속으로 빨려들어 가 버렸던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자 선수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샌디 라일.로넌 래퍼티 등은 3홀의 경기를 거부했으며 선두인 노먼을 비롯한 5개 대기조의 프로들도 「그린에서 망신당하느니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심정으로 이에 동조했다.대회본부는 해결책 을 찾아보려 했으나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54홀 대회로 축소하자니 여론의 비판이 두렵고,마지막 라운드를 하루 미뤄 월요일에 치르는 방안도 많은 프로들이 곧 이어지는 뉴질랜드와 유럽의 대회에참가해야 했기 때문에 역시 어려웠다.3홀을 뺀 71홀 경기로 하자는 궁여지책도 나왔지만 곧바로 거부됐다.
선수들도 마지막 라운드의 보이콧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으나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 경기를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몇 명의 선수가 기권한뒤 속행된 게임에서 노먼은 날씨 및 지형과의 악전고투 끝에 10타차로 우승했다.
〈林 秉太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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