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삼색의 군복"낸 李容相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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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올해 고희(古稀)를 맞은 시인 이용상(李容相)씨.나이만큼이나그의 삶에는 굴곡이 많았다.대한민국 남자라면 보통 군복을 한번입는다.그러나 그는 인생의 황금기인 20대 초반에 세 번이나 군복을 바꿔 입었다.그것도 자기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각기 다른 색깔의 군복을.처음에는 일본군복,다음에는 중국군복,그리고 해방후에는 대한민국군복을 걸쳤다.모두 다 나라를 빼앗긴 조국의비참했던 과거 때문이다.
기구했던 운명을 혼자 간직할 수 없었던 李씨가 그의 젊은 시절을 책에 옮겨 놓았다.제목은 『삼색의 군복』(한줄기刊).일제말기인 44년9월 징병1기로 소집되면서부터 중국유격대 생활을 거쳐 46년5월 서울역에 되돌아오기까지 2년 동 안의 생활을 고스란히 담았다.
『평범한 인생의 선배가 평범하지 못했던 경험을 후배에게 들려주는 기분으로 썼습니다.내년 해방 50주년을 맞아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5년전부터 조금씩 적었지요.』李씨는 70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또박또박하게 말을 꺼냈다.국민학교때부터 습관이 된 일기쓰기가 책을 쓰는 데 기초가 됐다고 한다. 『정말 입고 싶었던 옷은 광복군 군복이었습니다.징병되면서부터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지요.일본군을 탈출해 충칭(重慶)임시정부에 가서 독립운동을 해 보는 것이 꿈이었지요.』 하지만 운명은 그의 소망을 들어 주지 않았다.일어와 영어는 물론 중국어도 능통한 그를 중국군이 해방이 될 때까지 놓아 주지않았기 때문.그는 이후에도 귀국할 때까지 중국군의 일본군 접수작업을 도와 주었다.이때 김일성(金日成)의 동 생 김영주(金英柱)를 만나게 된다.당시 일본군통역으로 있었던 金과 그의 관계는 급속하게 깊어진다.사상.이념과 상관없이 아직도 李씨는 金을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요즘의 청년들이 이 책을 읽어 줄 것을 희망했다.그에 따르면 가장 큰 슬픔은 무엇보다 나라를 잃은 슬픔이다.국가는 공기와도 같은 존재여서 평소에는 가치를 깨닫지 못하지만 막상 없어지면 각 개인의 생활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이 비참해진다는 것이다.특히 자신과 같은 역사의 불행한 희생자가 되풀이해 생기지 않도록 인생선배의 솔직한 고백에 한번 귀 기울여 주기를 당부했다. 그는 아직 우리가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조국이 둘로 나눠진 현실에서 독립이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없지요.이역만리(異域萬里) 타국에서 피를 흘렸던 많은 투사들이바란 조국은 현재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지요.』 李씨는 그가 유격대로 청춘을 바쳤던 중국 창사(長沙)지역 사람들이 최근 그를찾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면서 내년 그곳을 방문할 계획이라며 말을 맺었다.지난 4월 아내를 잃은 그는 현재 경기도 성남시에서 지역신문.잡지 등에 기 고를 하며 혼자 지내고 있다.
〈朴正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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