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中立의 평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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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립(中立)은 분쟁시대를 사는 지혜다.자체 선언만으로 중립이보장되지는 않는다.노르웨이는 2차대전때 중립을 선언했으나 독일(獨逸)의 침공을 받았다.
중립협약은 한때「휴지쪽」으로 불리기도 했다.중립은 비동맹과는또 다르다.미국(美國)대통령 윌슨은『남의 일에 무관심한 것이 중립이 아니다.불편부당(不偏不黨)의 정신과 판단력에다 인류애와선의가 그 바탕』이라고 정의했다.공자(孔子)의 중용(中庸)만큼이나 행하기가 어렵다.
무솔리니는『피만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인다.중립주의자들은 역사에 아무 것도 기여할 수 없다』고 매도했다.중립의 유지는 노련한 곡예이자 기술이다.
냉전적 대결구도가 와해되면서「중립」의 의미가 흔들리고 있다.
스웨덴.핀란드.오스트리아는 국민투표를 거쳐 내년부터 유럽연합(EU)에 가담키로 확정했다.핀란드와 오스트리아의 중립은「주어진」중립이었다.소련(蘇聯)붕괴 직후 두 나라는 舊소 련과의 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들 3국은 중립을 버리지는 않았다.「유럽공동의 안보정책이 중립에 영향을 주지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스위스와 노르웨이가 EU가입을 거부했지만 국민투표의 찬반은 근소한 표차였다.노르웨이의 경우 연안어장의 보호에다「국가적 독립이 유럽관료 집단에 훼손당하는 것이 싫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스위스는 중립을 국가의「레종 데트르」(존재이유)로 떠받든다.제네바에 유엔의 각종 기구를 초치,국가적 잇속을 차리면서도 유엔가입은 꺼린다.60만 군대를 두고,유엔평화유지군으로 수백명을 파견했지만 이의 입법화는「중립훼손」을 이유로 거 부한다. 스위스 용병은 나폴레옹전쟁후 중립이 보장되면서 불법화됐지만로마교황청은 지금도 스위스의 정예 용병들이 경비를 맡고 있다.
화려한 줄무늬 제복에 그 용맹이 가려져 있을 뿐이다.
스웨덴이 핵확산 금지조약서명이후 25년동안 핵개발을 몰래 추진해온 사정 또한 중립국의 숨은 불안을 시사한다.「세계는 갈수록 상호의존적이고,주위환경이 자유롭고 안전할 때만이 비로소 자유롭고 안전할 수 있다」는 인식이 스위스에서도 고 개를 든다.
유럽 대다수 국가가 EU에 가입한다면 그 EU역시 더이상「동맹」이 아니다.
중립이「독야청청」의 외교적 도구로 통하던 시대는 지난 모양이다.「제3세계 실종」에 이은 중립의「중화」(中和)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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