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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숨은 보석’ 넬손 프레이리 내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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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60대에 전성기를 맞은 브라질 출신의 피아니스트 넬손 프레이리(63). 27일 내한연주를 앞두고 그를 전화 인터뷰 했다. 그가 전해준 ‘국민 신동’의 10대 시절에서 와신상담(臥薪嘗膽) 후 성공까지의 인생 스토리.

 1956년 브라질의 수도 리우데자네이루. 당시 브라질에서는 보기드문 행사가 열렸다. 시민들의 문화적 관심에 힘입어 열린 첫번째 국제 피아노 콩쿠르였다. 이 행사에 참가한 피아니스트는 약 80여명. 그 중에는 시골 마을 보스 에스페란사에서 막 올라온 12살 소년도 있었다.

 그는 5살에 우연히 들은 소리에 반해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그의 고향은 4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나가야 피아노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도시였다. 첫 스승은 소년을 12번 레슨한 후 “더 가르칠 것이 없다”고 했다. 다른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서 약국을 하던 부모는 다섯 남매 중 막내인 아들을 위해 상경을 결심한다. 그리고 처음 나온 무대가 바로 1회 리우데자네이루 국제 피아노 콩쿠르였다.

 이 시골 소년이 선택한 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331. 콩쿠르를 참관한 당시 대통령 주셀리노 쿠비체크는 영롱한 음색과 당찬 연주로 1위를 차지한 소년에게 “어느 학교를 가든지 2년동안 학비를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소년의 고향 마을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길도 생겨났다.

 브라질 국민 전체의 관심을 받았던 이 소년이 바로 넬손 프레이리. 클래식 음악의 ‘비주류’격인 브라질의 기대를 모은 10대 신동은 30대에 이르면서 슬그머니 흔적이 사라진다. “사람들의 관심과 스스로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연주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때문에 그의 이름은 국제무대에까지 알려지기 힘들었고 서서히 사라지는 듯했다. 동시대의 피아니스트인 마우리치오 폴리니(65), 다니엘 바렌보임(65) 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그는 연주 횟수를 줄이고 자신과의 싸움에 몰두했다.

 젊은 시절 대중과의 접촉을 줄인 그는 50대를 넘겨 다시 활발한 연주와 녹음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11월 뉴욕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 협연한 프레이리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그동안 잘 볼 수 없었던 그가 나타나 완벽한 연주를 들려줬다”고 전했다. 그는 건반의 핵심을 눌러내는 명료한 소리와 과장하지 않는 해석이 장기다. 프레이리는 “손이 작은 편이기 때문에 좀더 효과적으로 소리를 내야했고 결과적으로 음색이 좋아졌다”고 ‘비법’을 소개했다.

 이처럼 세계적 독주자로 명성이 제대로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특히 그가 62세에 녹음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앨범은 최근 음악계의 화제다. 2007년의 그라모폰 음반상을 수상하면서 “브람스 협주곡의 상을 정립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이 앨범의 성공으로 최근 연60회 이상의 연주 기회를 잡았다고 한다. 프레이리는 “사람은 컴퓨터가 아니기 때문에 나이를 먹을수록 더 좋아지는 것도 있다. 60세를 넘기니 음악의 새로운 면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것이 내가 연주를 계속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프레이리는 브람스 협주곡 2번을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서울시향과 협연한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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