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어린시절>삼성 양준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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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깁스만 빨리 풀지 않았어도 지금쯤 투수로 이름을 날렸을텐데….』 양철식(梁哲植.59)씨는 야수에 비해 훨씬 비싼 투수들의 몸값을 생각하면 아들 준혁(埈赫)의 중2시절 「깁스사건」이못내 아쉽다.
4촌형인 양일환(梁日煥.삼성코치.당시 대구상고)의 야구하는 모습에 반해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야구를 시작한 양준혁의 포지션은 투수였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서 뿌려지는 강속구가 제법이어서 남도국민학교를 거쳐 경운중학교로 진학할 때까지 팀내 에이스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문제는 2학년으로 진학하던 해 초봄에 발생했다.
그동안 다소 무리를 한 탓에 팔꿈치 물렁뼈에 가벼운 부상을 당해 깁스를 해야했다.
의사는 40일동안 깁스를 하도록 처방했으나 감독이 소년체전을앞두고 지역예선에 출전하기 위해 보름이나 먼저 깁스를 풀게 했다. 예선에서 무리하게 2경기나 완투한 양준혁은 제주도에서 벌인 본선에서는 팔꿈치가 부어 한게임도 던지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그렇게 아픈 와중에서도 梁은 타자로 출전,맹타를 휘두르며 타격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사건(?)이후 팔근육이「뒤틀리는」 고통끝에 결국 투수자리를 포기하고 내야로 포지션을 바꿔야 했다.
물론 국민학교 6학년때 통산 0.557이라는 경이적(?)타율로 경북도내 타격1위를 차지한 천부적 타격감각 덕분에 타자로서도 대성할 수 있었지만 양준혁의 야구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릴수 있는 위기였음은 틀림없다.
『눈앞의 성적에만 집착해 선수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중.고야구풍토의 희생자가 될 뻔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막내아들인 준혁을 야구부가 있는 국민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이사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 梁씨의 개탄섞인 회고다.
〈李炫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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